항목 ID | GC02800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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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沙縣 |
영어음역 | Jangsa-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상하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고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고창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 무령군조에 "본시 백제의 상로현(上老縣)으로, 경덕왕이 장사(長沙)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다[長沙縣 本百濟上老縣 景德王改名 今因之]."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무장현 건치 연역조에는 "본래 백제의 상로현(上老縣)이었는데, 신라가 장사라고 고쳐서 무령군의 영현으로 하였고, 고려에서는 그대로 따랐다가 뒤에 감무를 두어 무송을 겸임케 하였다[長沙縣 本百濟上老縣 新羅改長沙爲武靈郡領縣 高麗仍之 後置監務兼任茂松]."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여지도서(輿地圖書)』, 『무장군읍지(茂長郡邑誌)』 등에 관련 기록이 있다.
[변천]
장사현 지역은 처음에 마한 땅이었고, 백제 시대에 상로현(上老縣)으로 개칭하였다. 757년(경덕왕 16) 지명과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장사현으로 개칭하여 이웃한 무령군[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이어져 오다가 후기에 장사감무를 두어 장사현과 인접한 무송현을 함께 관할하게 하였다. 1415년(태종 15) 무송현과 장사현을 병합하여 무장현으로 개편하고 치소를 무송현으로 옮겼다. 무송현과 병합되기 전 장사현의 치소는 지금의 상하면 하장리 하장사마을과 공음면 두암리 장사골 일대로 추정된다.
두암리는 조선 말기 무장군 동음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웃한 송운리와 신흥리를 병합하여 두암리라 하고 공음면에 편입하였다. 말바우가 있어 말바우 또는 두암이라 하였다. 두암리 외두마을 서쪽에 장사골이란 지명이 남아 있어 장사현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장리는 조선 말기 무장군 하리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옛 장사현의 아래쪽 지역이므로 하장리 또는 하장사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정리·원두리·오룡리·갈오리·회정리·용대리 각 일부를 편입하여 하장리라 하고 상하면에 편입하였다. 지명으로는 장사현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곳이 없으나 하장리 자체가 옛 장사현의 아래쪽이었으므로 이곳에 옛 장사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상하면사무소 뒤 동남쪽에 있는 장사산 정상에 산성 터가 있고 성터 부근에 많은 자연 석재들이 흩어져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무장조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성곽조에 “옛 장사는 지금의 치소[무장]에서 북쪽으로 20리에 있다. 석성 터가 남아 있다[古長沙 在今治北二十里 有石城址].”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옛 장사현의 치소는 무장현의 치소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그곳에 석성 터가 있다는 것이다.
[현황]
현재 장사산이 무장동헌이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약 8㎞[20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장사산 정상에 있는 성터가 옛 장사성임이 분명하다. 또 성터 부근에 흩어져 있는 많은 자연 석재들은 장사성이 석성이었다는 문헌 기록과 일치한다. 이로써 장사산 정상에 있던 옛 성이 장사현의 치소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