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34 |
---|---|
한자 | 金升玉 |
영어음역 | Gim Seungok |
이칭/별칭 | 일우(一愚),김일(金一),김구(金九)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8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독립운동가|교육가 |
---|---|
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81 |
성별 | 남 |
생년 | 1889년 5월 28일 |
몰년 | 1964년 9월 13일 |
본관 | 김해 |
대표경력 | 고창청년회 위원장 |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일우(一愚)이다. 188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81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김준희(金俊禧)이다.
[활동사항]
김승옥은 18세 되던 1907년에 고창 지역에 있는 한문 사숙(私塾)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고창면사무소 면서기로 근무하다 고종 황제의 국상을 맞아 고창 지역 3·1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그는 거사를 치르기 위해 오동균(吳東均)과 김창규(金昌奎) 등 고창 지역 청년들로 구성된 ‘고창청년회’ 회원들을 소집하여 조직, 공작, 동원, 연락에 관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1919년 3월 19일 고창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3월 18일 밤에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면사무소의 등사관을 이용하여 「독립선언문」과 유인물 등을 등사하였는데, 비밀이 누설되어 복사물을 압수당하자, 3월 21일을 기하여 고창청년회원 및 고창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년 6개월 형을 언도 받았다.
김승옥은 출옥 후인 1923년부터 고창청년회장으로 추대되어 1926년까지 고창 지역 노동 운동을 주도하였다. 자녀들에게는 민족혼과 애국 사상을 심어 주기 위해 애국지사 이름인 김일(金一)·김구(金九)로 호적을 개명하는 등 항일 운동을 계속하였다. 또한 후진 양성을 위해 고창고등보통학교의 설립위원을 맡아 동분서주하였으며, 1926년에는 조선농인사(朝鮮農人社) 결성에 참여하여 상임이사로서 상해임시정부의 재정 연락을 담당하였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고창군위원장에 피선되었고, 조선독립고창군협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여성 교육에도 힘써 고창여자중학교와 고창여자고등학교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여 여성 교육의 기초를 닦았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