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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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羊祠 |
영어음역 | Baegyangsa |
영어의미역 | Baegyangsa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 73[백양길 8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범호,김정웅 |
성격 |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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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637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 73[백양길 85-1]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에 있는 김두남·김지남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개설]
백양사는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신이 된 승지(承旨) 청계(淸溪) 김두남(金斗南), 월재(月齋) 김지남(金志南)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우이다. 김축은 김극일의 현손(玄孫)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임진왜란 당시 80세의 고령임에도 아들 김기경(金起庚)과 아우 김헌(金軒)의 아들인 김두남·김지남 등을 데리고 향리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권율의 휘하로 들어가 웅치전투와 이치전투를 거쳐 경상도로 가서 1593년(선조 26년)에 진양(晋陽)[현 진주]을 버리고 도망하는 관병이 충의가 없는 것에 분개하며 김천일, 고경명, 조헌 등과 합세하였다. 그러나 진주성을 방어하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손자 김영립(金榮立)을 시켜 도체찰사 김관(金瓘)에게 가서 구원을 요청하라 하였으나 원병이 미처 오기도 전에 진주성이 함락되자 이들은 모두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이에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의 녹권이 내려져 김축에게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일등훈(一等勳)이, 김두남에게는 의금부도사 이등훈(二等勳)이, 김지남에게는 좌부장(左部將) 이등훈(二等勳)이 내려졌다. 이후 왕명으로 삼충부조묘(三忠不祧廟)가 건립되어 후손들에게 특전을 내려 대대로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위치]
백양사는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 백양마을 입구에서 마을길을 따라 아래로 돌면 나오는 남쪽 끝 마을 안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1637년(인조 15) 왕의 옥쇄가 찍힌 『단서철권(丹書鐵券)』을 하사 받고 어사각(御賜閣)과 삼충부조묘를 창건하였다. 1762년(영조 38) 김두남의 5세손인 김천오(金天五)와 김수오(金秀五)가 삼충부조묘를 중건하고 백양사라 이름하였다. 1836년(헌종 2) 전라감사 김성근(金聲根)은 ‘삼충부조(三忠不祧)’ 현판 글자를 써 주었다. 1881년(고종 18) 김두남의 5세손인 참판 김봉회(金鳳會)가 중수하였다. 1940년 후손인 김호병(金鎬炳)·김봉덕(金鳳悳)·김봉인(金鳳仁)이 중수하였다. 1993년 김두남의 12대 종손인 김정웅(金正雄)이 삼충부조(三忠不祧) 외삼문(外三門)과 본전(本殿)및 장원 번와 전체를 중건하였다.
[형태]
삼충부조묘는 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본전에 걸려 있는 ‘삼충부조(三忠不祧)’라는 글자는 1836년에 전라감사 김성근이 쓴 것이다.
[현황]
매년 4월 5일[식목일 청명·한식]에 제사를 지내며, 의금부도사 두남(斗南)의 12대 종손인 김정웅이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