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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219
한자 金士衡不祧廟
영어음역 Gim Sahyeong Bujomyo
영어의미역 Ancestral Shrine for Gim Sahyeong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산 1056-3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주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부조묘
건립시기/일시 조선 전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산 1056-3 지도보기
소유자 안동김씨 좌랑공파 종중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사형(金士衡)의 부조묘.

[개설]

부조묘란 국가를 위한 공로가 큰 사람에 대하여 왕의 불천지위(不遷之位)를 허락받아 설립한 사당을 말한다. 김사형(金士衡)[1333~1407]은 고려 후기,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이다. 고조부는 김방경(金方慶)이고, 할아버지는 김영후(金永煦)이며, 아버지는 부지밀직사사 김천(金蕆)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대간을 지내고 개성윤(開城尹)이 되어 보리공신(輔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뒤, 교주강릉도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로 나갔고, 1390년(공양왕 2) 지밀직사사 겸 대사헌이 되고, 이어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승진하였다.

삼사좌사(三司左使), 동판도평의사사(同判都評議司事)로 있다가 여러 장상들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해 개국공신 1등에 봉해지고, 문하시랑찬성사 겸 판상서사사 겸 병조전서응양상장군(門下侍郎贊成事兼判尙瑞司事兼兵曹典書鷹揚上將軍)에 올랐다. 같은 해 12월 문하우시중에 제수되고, 상락백(上洛伯)이란 작위와 함께 식읍 1,000호 및 식실봉(食實封) 300호를 받았다. 1396년(태조 5)에 도통처치사(都統處置使)가 되어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그 뒤 좌정승을 지냈고,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백관을 거느리고 대궐에 가 적장(嫡長)을 후사로 세울 것을 요청해 정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책봉되었다. 1399년(정종 1) 등극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를 지내다가, 1401년(태종 1)에 다시 좌정승에 복직되고 이듬해 영사평부사를 지낸 다음,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진 뒤 관직에서 물러났다. 시호는 익원(翼元)이다. 김사형의 후손들은 조정의 허락을 받아 김사형 부조묘를 세워 오늘날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다.

[위치]

고창읍 도산리에 있었으나 2006년 8월 22일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도암서원(道巖書院)으로 옮겼다. 고창읍에서 국도 15호선을 따라 영광 법성포로 가다가 국도 796호선으로 옮겨 가면 공음면 칠암리 갑촌마을이 나타난다. 여기에 안동김씨 김질(金質)을 주벽으로 모시는 유서 깊은 도암서원이 있고, 서원 경내에 따로 담장을 쌓고 구획을 획정하여 김사형 부조묘가 건립되어 있다.

[변천]

원래 황해도 평산 엽동에 김사형 부조묘와 「김사형 영정」이 봉안되어 있었다. 1870년(고종 7)에 김사형 부조묘는 전라남도 영암으로 이건되었다. 영암으로 이건한 연유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이는 종손의 이사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암에 있던 김사형의 사당인 부조묘는 1872년(고종 9) 8월에 다시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용실동으로 이전하였다.

1900년(고종 37)에는 김사형 부조묘를 강내면 용실동에서 같은 강내면 궁현리로 이건하였는데, 주창자는 김영필, 간사 김태로, 김윤원, 김민상, 김재경이며 이건기(移建記)는 행주 기우만이 썼다. 또한 1916년에 김사형 부조묘를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궁현리에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 석탄마을로 이전하였다. 이곳에 「김사형 회맹철권」을 보존하였다.

1934년에 다시 김사형 부조묘를 부여읍 저석리에서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로 이전하였다. 상량문은 도산 김정회가 썼다. 고창으로 김사형 부조묘가 이전된 이유는 안동김씨 익원공파의 종손이 고창에 살고 있는 김영필(金榮珌)이기 때문이었다. 김사형 부조묘는 다시 2006년 8월 22일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갑촌마을로 이건하였다. 한편 「김사형 영정」은 원래 고창의 종손가 김영필 집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1936년에 17세손 참봉 김영주(金榮珠) 등이 종손과 상의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 매각마을 낙포영각(洛圃影閣)으로 옮겨가 1938년에 영정각을 세우고 봉안하였다.

[형태]

도암서원 북쪽에 따로 담장을 둘러 별도의 영역으로 구성하였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이며,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풍판을 달았다. 새로 지은 건축물이기 때문에 단청이 산뜻하다. 또한 지반보다 살짝 올라가게 시멘트로 기초를 다진 뒤 복발형 초석을 놓았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앞면의 협칸과 어칸에 여러 개의 기둥을 세웠기 때문에 건물이 화려하게 보인다. 공포는 앞면은 이익공 양식이며, 뒷면은 초익공 양식이다. 살미에는 연꽃과 연봉을 조각하였고, 창방 위에는 귀면 화반을 배치하여 장여와 도리를 받치게 했다.

[현황]

김사형 부조묘는 그동안 고창읍 도산리에 있다가 현재의 도암서원 곁으로 옮겨졌다. 도암서원의 주벽이 같은 안동김씨김질이기 때문에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건립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산뜻하다. 안동김씨 종중에서 힘써 관리하기 때문에 관리 상태도 양호하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7.21 [개설] 수정 <변경 전> 태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변경 후> 정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이용자 의견
김** 위 [개설 ] 익원공 김사형 의 정사공신 1등 책록 부분에서 태종 의 즉위를 도운게아니라,
그때의적장자인 정종 의 즉위를 도왔다는게 맞는것같습니다.
  • 답변
  • 디지털고창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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