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517 |
---|---|
한자 | 光升里上阜堂山祭 |
영어음역 | Gwangseung-ri Sangbu Dangsanje |
영어의미역 | Village-Ritual Ceremony of Sangbu Village, Gwangseung-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 상부마을 |
집필자 | 송화섭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 상부마을에서 정월 열나흘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광승리 상부마을 당산제는 고창군 해안 지역 어촌인 상부마을에서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상부마을은 43여 가구의 170여 명이 살고 있는 마을로 여느 마을에 비해 그 규모가 큰 편이며, 박씨와 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생업이 농업과 어업을 겸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비교적 다른 마을보다 청·장년들이 많다. 마을 공동 제사는 당산제와 천룡제, 수신제의 전통을 가진 마을이었으나 2010년 현재는 당산제가 상부마을의 중심적인 동제로 자리 잡았다.
[연원 및 변천]
상부마을의 광승리는 원래 무장군 오리동면의 지역으로서 ‘광승이’ 또는 ‘광생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부리와 외경리 일부를 병합하여 광승리라 하여 해리면에 편입되었다. 광승리는 광승, 외경, 내경, 상부의 네 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상부마을은 ‘불등’이라는 지명으로 외경마을의 서쪽에 위치하며, 바다에 접해 있다. 그리고 마을 동쪽으로는 벼농사의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상부마을의 당산은 천룡 당산과 할머니 당산이 있다. 천룡은 마을 가운데 위치한 팽나무를 가리키며, 할머니 당산은 마을 입구에 위치한 당산 선돌을 가리킨다. 예전에는 할머니 당산 앞으로 길이 있었는데 그 후 경지를 정리하면서 길이 없어졌다.
당산 할머니는 원래 1m가 안 되는 높이의 입석이었으나, 8년 전에 마을로 들어오는 트럭과 입석이 부딪혀 당산 선돌의 일부가 파손되었다. 그 일이 일어난 뒤로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계속 일어나자, 주민들은 당산 할머니를 잘 모시지 못해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마을 회의를 통해 1998년 보름날 당산제를 지내면서 새로이 돌을 사서 할머니 당산을 다시 모셨다. 그리고 그 전의 할머니 당산은 당산이 위치한 옆 땅 속에 묻어 두었다.
천룡 당산은 ‘할아버지 당산’, ‘천룡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약 400년 정도 수령의 팽나무가 천룡 신체로 신앙되고 있다. 팽나무 아래에는 시멘트로 견고하게 구획 짓고 있어 팽나무가 아래로 쳐지는 것을 막고 있다. 천룡 당산의 크기는 지금 보다 훨씬 컸으나 나무 옆에 위치하는 집의 피해를 막기 위해 가지를 일부 잘랐다. 이 당산나무가 봄에 한꺼번에 잎이 피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당산나무 주위의 삼면으로 집들이 둘러싸여 있는데 대략 50년 전에 넘어졌다고 한다.
[절차]
당산제를 주관하는 제관은 당산제 일주일 전에 선정한다. 제관은 주민 가운데 깨끗하고 생기 복덕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제관과 더불어 제수 비용도 마련한다. 이장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제비를 걷는데, 마을 사람들은 성의껏 돈과 쌀로 낸다. 이렇게 거출된 돈을 마을 사람들은 ‘망주’라고 부른다. 제비는 대략 백만 원 정도 소요되는데, 부족한 금액은 마을 기금으로 충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마련된 제비로 예전에는 마을에서 깨끗한 사람이 모든 제물을 장만했으나 몇 해 전부터는 마을 회관에서 공동으로 장만한다. 제수는 초열흘날 이후 장이 서는 해리장에서 사온다. 예전에는 매년 제기를 새로 구입하였으나, 지금은 계속해서 사용한다. 제수는 주로 생선, 나물, 떡, 돼지머리 등이며 깨끗한 네 군데에서 제를 모시기 때문에 제물을 각각 미리 마련해 놓는다.
선정된 제관은 그날 이후부터 스스로 근신하며 궂은 곳에 가지 않고 합방도 하지 않으며 언행도 삼가는데, 특히 욕을 하지 않는 등 근신하는 생활을 한다. 예전에 3년 동안 제관을 지낸 마을 사람이 당산 할머니가 도와줘서 그 다음해에 아들을 낳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제관이 선정된 그날부터 제관의 집 대문에 금줄을 친다. 이는 궂은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당산에는 금줄을 치지 않는다. 금줄은 열 나흗날 저녁 제관이 당산제를 모시러 집을 나가면서 걷어버린다. 이는 깨끗한 제물이 집밖으로 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걷어버린 금줄은 대문 한쪽에 놓아두는데, 썩을 때까지 그대로 놓아둔다. 근래에는 이렇게 금줄을 치지는 않지만 주민 스스로가 근신하며 조심스러워 한다.
상부마을의 당산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 10시 경에 지낸다.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 그동안 이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에 돌아가신 분이 없어 지금까지 당산제를 미뤄본 적이 없다. 예전에는 당산제를 모실 때 부녀자들이 참가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부녀자들도 참가한다. 정월 열 나흗날 저녁 제관 부부가 당산제를 제일 먼저 모시는데, 모시기 전까지는 동네 사람들은 당산에 함부로 가지 않는다. 이때는 할머니 당산에만 모시는데, 예전부터 부부가 함께 모셨고 혼자 사는 사람은 당산제를 모시지 않았다. 제관 부부가 할머니 당산 앞에서 준비한 제물을 차려 놓고 간단하게 제를 모신다. 축문이나 소지는 하지 않는다.
제의가 끝날 무렵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굿을 치면서 당산으로 모여 들어 같이 제를 모신다. 제를 모신 뒤에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 당산 앞에서 간단히 음복을 한다. 그리고 제관의 집에 모여 다음날 줄다리기에 관해 상의하며 밤늦도록 먹고 논다.
그 다음날인 보름날에는 아침부터 짚을 모아 줄을 비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주민 모두가 모여 줄다리기를 한 후에 천룡과 할머니 당산에서 다시 제를 모신다. 먼저 마을 사람들이 줄을 메고 천룡 앞으로 나아간다. 천룡이 위치한 곳은 박균양의 집안 뒤쪽이다. 박균양의 증조 때부터 매년 천룡을 모시기 위한 제물을 준비해 왔으나 지금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마련한다. 천룡에 간단히 제를 모신 뒤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음복하며 풍물소리와 함께 마음껏 논다. 그 뒤에 할머니 당산으로 나아가 주민들이 메고 온 줄을 할머니 당산에 감고 다시 제를 모신다.
열 나흗날 저녁에 모신 제의는 풍물을 치지 않는 가운데 제관 부부만 모시므로 대체로 조용하고 엄숙하며 경건하다. 제가 끝나면 그때서야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풍물을 치며 간단히 음복을 하는 정적(靜的)인 당산제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보름날 줄다리기와 함께 모시는 당산제는 주민들 모두가 참여하여 풍물이 울리는 가운데 떠들썩하고 흥겨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동적(動的)인 마을 제사이다.
보름날 줄다리기를 진행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은 몇 해 전부터 바닷가의 ‘개뿔’에서 수신제를 모시고 있다. 마을 사람 중에는 바다에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들이 무사하고,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제를 모신다고 한다. 개뿔이라 부르는 이곳은 바다에 바로 인접해 있고 기암괴석으로 둘러져 있다. 그리고 땅 속에서 민물이 나와 마을 사람들은 이를 신기하게 여긴다. 외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리기 위해 이곳을 찾기도 한다.
[축문]
유 세차을유정월갑자삭십오일 무인어촌계장박권철감소고우 금위수신제주민화합 건강대길농업대풍어업만선 소원성취흥왕신기보우근일청작 서차저우신상 향(惟 歲次乙酉正月甲子朔十五日 戊寅漁村契長朴權徹敢所告于 今爲修身祭住民和合 健康大吉農業大豊漁業滿船 所願成就興旺神其保佑謹日淸酌 庶差柢于神尙 嚮).
[현황]
상부마을의 당산제는 이중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저녁에 제관 부부가 주관하는 천룡 당산과 할머니 당산에 대한 제의는 엄숙하고 정적인 마을 제사이다. 반면에 다음날인 정월 보름날에 거행되는 줄다리기는 천룡제를 지낸 후에 주민들이 줄다리기로 마을 공동 제사를 개최한 뒤 줄을 할머니 당산에 감아 놓는 굿 놀이 형태의 동적인 제의를 거행한다. 고창 지역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천룡제와 당산제와 줄다리기가 조합된 전형적인 고창식 동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