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7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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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金氏三綱門 |
영어음역 | Gwangsangimssi Samgangmun |
영어의미역 | Memorial Gate for Gwangsan Gim Cla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학전리 158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주명준 |
성격 | 효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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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정려각|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450년 |
정면칸수 | 2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학전리 158 |
소유자 | 광산김씨 종중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학전리에 있는 조선 전기 광산김씨 가문의 정려.
[개설]
광산김씨 한 집안에서 4세에 걸쳐 다섯 사람이 효행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그리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남편을 뒤따랐던 열행으로 나라에서 각각 정려를 내렸다. 이는 조선 시대에도 보기 드문 집안이다.
증자헌대부 예조판서(贈資憲大夫禮曹判書) 김순(金純)은 부모상에 여묘하여 새와 백호가 감응하는 효행으로 1556년(명종 11)에 정려되었다. 인조 때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김경헌(金景憲)의 처 한양조씨(漢陽趙氏)는 남편의 상을 당해 아들 김광운(金光運)과 함께 3년간 여묘하고 마지막 제사를 지낸 뒤 피를 토하고 죽자 1635년(인조 13) 정려가 하사되었다.
김경헌과 한양조씨의 아들이며 성균진사(成均進士) 증공조참의(贈工曹參議)인 김광운(金光運)의 처 증숙부인 제주양씨는 남편이 임진왜란 때 전사하자 아들 김두남(金斗南)을 의진에 보내 복수케 하고, 적을 피해 삼향포에서 물에 빠져 죽자 시어머니와 같은 해인 1635년(인조 13) 명정(命旌)되었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순절한 김두남(金斗南)의 처인 제주양씨는 시어머니가 물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사실을 적어 여비(女婢)로 하여금 집에 알리게 하고 또한 투신하여 죽으니 시어머니와 함께 정려되었다.
김두남의 계배(系配) 남평문씨(南平文氏)도 부친이 창의하여 죽자 복수하지 못함을 한탄하더니 남편의 상을 당해 여묘하고 수년동안 하늘을 보지 않고 죽자 1450년(효종 1)에 정려되었다.
[위치]
고창군 아산면에서 지방도 733호선을 따라 해리면으로 가면 학전리 마을이 나온다. 그 마을 뒤편 길가에 광산김씨 삼강문이 있다. 주위에는 집들이 들어서 있다.
[변천]
광산김씨 삼강문은 나주의 남당리에 있었으나 1919년에 자손을 따라 이곳으로 옮겨졌다. 정려각에는 오준선(吳駿善)이 쓴 「광산김씨사세오정이건기(光山金氏四世五旌移建記)」와 김수교(金壽敎)가 쓴 「포월당사세오정이건기(抱月堂四世五旌移建記)」가 있다.
[형태]
내삼문에 정면 2칸, 측면 1칸이며 팔작지붕에 겹처마이다. 돌담이 사각형으로 둘러져 있다. 콘크리트로 만든 기단 위에 복사발형 주초를 놓았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창방과 결구하고 있다. 벽체는 홍살로 처리하였다.
현판은 다섯 개가 있는데 ‘효자 증자헌대부 예조판서 김순지려(孝子贈資憲大夫禮曹判書金純之閭)’와 ‘열녀 성균진사 증공조참의 김광운 처 증숙부인 제주양씨지려(烈女成均進士贈工曹參議金光運妻贈淑夫人濟州梁氏之閭)’, ‘절부 증호조참판 행좌승지 김경헌 처 증 정부인 한양조씨지려(節婦贈戶曹參判行左承旨金景憲妻贈貞夫人漢陽趙氏之閭)’, ‘열녀 임진공신지중추 김두남 처 증 정부인 제주양씨지려 증정부인 남평문씨지려(烈女壬辰功臣知中樞金斗南妻贈貞夫人濟州梁氏之閭贈貞夫人南平文氏之閭)’라 쓰여 있다.
[현황]
오래된 건물이 아니어서 보존 상태는 매우 좋다. 그윽한 멋을 뿜어내는 건축물이다.
[의의와 평가]
한 집안에서 4세에 걸쳐 다섯 사람이 나라로부터 정려를 받았다. 이는 조선 시대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부모에 대한 효행 하나만으로 정려를 받은 것이 아니고, 외적의 침략을 받아 국가 수호의 중대한 임무를 띠고 나가 싸우다 순절한 남편을 뒤따라 죽는 열행 등은 당연히 국가로부터 표창을 받아야 할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