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A01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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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해숙 |
[일제강점기 유림들이 세운 도동사]
도동사(道東祠) 는 가평리 가평마을을 대표하는 문화 유적이다. 도동사 외삼문 안에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방호정사가 위치하며, 그 뒤에 다시 외삼문이 있고, 그 뒤편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사당[도동사]이 배치되어 있다.
도동사는 1920년대 초반 고순진(高舜鎭)ㆍ고예진(高禮鎭) 형제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과 전국의 유림들이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과 수남(秀南) 고석진(高石鎭)의 숭고한 도학 정신과 위국충절을 추모하고자 건립을 추진했던 사당이다. 그러나 1924년 3월 일제의 강압으로 공사가 중지되었다. 이후 1928년 3월에 전국의 유림들이 다시 사당을 완공했으나 일제가 치안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향사(享祀)를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8ㆍ15해방 후인 1946년 6월 6일 처음으로 최익현과 고석진을 함께 모시고 향사를 하였고, 1962년에는 송천(松川) 고예진을 모셨고, 1997년에는 송재(松齋) 고용진을 추가로 모셨다.
도동사 에서는 매년 양력 5월 5일에 전국의 유림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를 올리고 있다. 2002년부터는 유림들의 합의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벽에 최익현을 모시고, 고용진, 고석진, 고예진 순으로 변경하여 제를 모시기로 했다. 2009년 10월 10일에는 최근덕 성균관장, 이강수 고창군수, 송영래 고창문화원장 외에 유림과 후손, 지역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추모제가 열렸다.
[항일 운동의 중심지로 우뚝 섰던 도동사]
1880~1890년대 최익현은 방호정사(方壺精舍)를 자주 오가며 800여 명의 제자들을 가르쳤다. 또한, 이후에는 고석진과 고예진이 인재를 양성했다. 고용진ㆍ고석진ㆍ고예진은 1905년 말 을사조약에 항거해 의병 봉기를 계획한 뒤 충청남도 청양에서 단식 투쟁을 하고 있던 최익현에게 의병 봉기를 강력히 주청해 허락을 받았고, 도동사 자리에서 의병 100여 명을 소집해 본격적인 봉기 준비에 나섰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06년 4월 13일[음력] 도동사에서 멀지 않은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무성서원(武城書院)[면암 최익현과 같은 경주최씨 최치원 선생을 모신 곳]에서 최익현을 의병대장으로 한 의병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시 1000여 명으로 불어난 의병들은 태인, 정읍, 순창, 구례, 곡성 등에서 전과를 올렸으나 1906년 4월 22일[음력]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울분을 삼켜야 했다. 최익현은 일본 쓰시마섬으로 끌려 간 뒤 단식을 하다 옥사했고, 고용진ㆍ고석진ㆍ고예진 역시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이후 고용진ㆍ고석진ㆍ고예진은 1912~1914년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활동했던 전국 유림의 비밀 결사 조직인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에서 활약하였다. 특히 고예진은 고종으로부터 1914년 2월에 독립의군부 활동과 관련해 칙명을 받았는데, 이와 같은 내용은 고종이 조선의 독립에 계속 뜻을 두고 독립 운동 세력을 후원했음을 증명하는 사료로서, 현재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고, 독립기념관에도 전시되어 있다.
이후 고석진과 고예진은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 청원을 넣기 위해 전국의 유림 대표 137인이 참여한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였다. 현재 서울 장충단공원에는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가 우뚝 서 있다. 면암 최익현은 대한민국 독립장 제1호이며, 고용진ㆍ고석진ㆍ고예진은 독립 운동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마을의 자랑 도동사]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 운동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도동사는 오늘날까지도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을 추모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ㆍ문화적으로 가치와 의미가 크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유생과 후손들이 그들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 문화 마을 가꾸기를 통해 마을 사람 모두가 이러한 역사적 인물을 모시고 있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후손들에게 물려 줄 중요한 마을의 자산임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도동사의 외삼문 뒤편에는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 1기가 보존되어 있다. 또한 사당 앞으로는 돌로 쌓은 수로(水路)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다. 도동사는 국가보훈처에서 지정한 현충 시설로서, 2004년 6월 8일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