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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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天卿 |
영어음역 | Jeong Cheongyeong |
영어의미역 | Jeong Cheongy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경수 |
[정의]
조선 중기 공주에서 활동한 유학자.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활동사항]
『선조실록(宣祖實錄)』에 의하면 선조 24년 사간원에서 “후릉참봉 정천경은 계차를 무시하고 승진하기 위하여 출사를 계산할 적에 간교하고 참람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파직시키소서”라는 기록이 있다. 선조 29년에는 “일을 잘한다는 명성을 얻어 백 리나 되는 고을의 원이 되었으나 역란(逆亂)을 만나자 고을을 버리고 도주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충청도순안어사(忠淸道巡按御史) 이시발(李時發)이 보낸 서장에도 그와 관련된 기록이 보인다.
“정산현감 정천경의 첩정(牒呈)에 ‘이달 7일 승려와 일반인 및 군사 등 무려 1,000여 명이 홍산 땅 쌍방축(雙防築)에 모여 둔치하고서 바로 홍산 고을로 가서 현감을 끌어내어 군법을 시행하고 인신(印信)을 가져와 바치도록 했으며 무기를 수색해 냈다. 심지어는 호각을 불며 기독(旗纛)을 내어 들고서 임천까지 행군하였으며, 또한 쳐들어가 군수를 끌어내 목을 묶고는 조목(條目)을 받들게 하여 적들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라고 했습니다. 보고 듣기에 지극히 놀라운 일이므로, 사실이고 아니고 간에 첩보한 것에 따라 치계하는 한편, 가까운 고을의 포수와 살수들을 조발하여 체포할 계획 중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선조실록(宣祖實錄)』의 기록은 정천경의 활동 사항을 보여 주는데, 선조 재위 기간 국정 운영에 상당히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훈과 추모]
1829년에 건립된 요당서사(蓼塘書社)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