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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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謠 |
영어의미역 | Folk S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집필자 | 이걸재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민중들이 일상적인 삶을 통해 불러온 전통적인 노래.
[개설]
공주는 충청남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고장이다. 지리적인 여건으로 볼 때 북서쪽의 차령산맥권과 동쪽의 계룡산권과 남쪽의 평야 지대로 나뉜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지역에 따라 다른 성질의 민요가 도입되었다. 북쪽으로는 경기 민요의 영향을 받아 경조의 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동쪽의 계룡산 권역인 계룡면과 반포면 장기면의 일부는 대둔산에서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따라 흐르는 메나리조의 민요가 경조의 민요와 섞여 있는 양상을 보인다. 논산의 들과 인접한 계룡면의 일부와 이인 탄천면은 전라도 민요의 영향을 받아 육자배기와 경조가 혼재한 형태로 나타난다.
공주는 경조·메나리조·육자배기조의 민요가 모두 불리는 고장이면서도 창법에 있어서는 중고제 판소리 중심 고장의 특징을 매우 강하게 지닌 고장이다. 경기민요조의 노래인 「창부 타령」, 「노랫가락」, 「청춘가」, 「아리랑」을 즐기면서도 상청의 높고 고운 소리를 즐기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목소리인 평성으로 흥겹게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메나리조의 일노래들도 경기 민요처럼 흥겹게 부르되 평성으로 부른다.
특히 현대음악 개념의 열창을 좋아하지 않아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면, “광대 될라구 악을 써? 듣기 편한 노래가 젤인겨.”라는 말로 거부감을 나타내는 고장이 공주다. 이는 여인들의 민요에서도 나타난다. 양반의 고장이라는 전통 사회의 정서는 노래 잘하는 여인은 난봉날 가능성이 많은 여인으로 치부하여 ‘기생소리 잘하는 여인네’라 대하고 있다. 따라서 여인들의 민요 역시 평성 소리로 부르는 것이 많은 고장이다.
[고급문화가 출입하는 공주]
“노자 젊어서 노자/ 늙어지며는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저 달 차며는 기우나니/ 인생은 일장 춘몽인디/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는 가장 흔하게 불리는 노랫가락의 한 구절이다. 서양의 문화가 유입되어 왕성하게 커나가고 이들이 경제 발전의 요구와 맞물려 배고품부터 해결하자는 새마을 운동이 발생하였다. 근면·자조·자립을 목표로 모든 사회가 새마을 운동을 중심으로 변모해나간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노래만큼 구박을 받았던 노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점은 노랫가락의 가사가 시조(時調)를 중심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하여가」, 「오우가」, 「농부사시가」 등 많은 시조들이 농사짓는 아낙네들의 노래가 되어 호미 끝에서 묻어 나왔다. “백두산석(白頭山石)은 마도진(磨刀盡)이요”로 시작되는 남이(南怡) 장군의 한시나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굽혀 누었으니”하는 『논어(論語)』술이편(述而編)의 유명한 문구가 변형 없이 노래의 가사가 되어 불리어졌다. 이렇게 당대 최고의 지성들의 사고와 정서가 담긴 문학 작품들이 글을 모르는 서민들에게 전파되어 삶을 여유롭고 윤택하게 하는 귀중한 역할을 해주었다.
더구나 이렇게 사용된 사례는 아주 광범위하여 토속적인 면이 남아있는 소리(일명 국악)의 거의 모든 분야가 그러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휴정이 쓴 「회심곡」은 「상여소리(輓歌)」, 「청춘가」, 「백발가」, 「노랫가락」 등의 가사로 이용되었고, 조선조의 가사 문학들은 단가(短歌)로, 각종 시조들은 「청춘가」, 「노랫가락」, 「태평가」 등에 사용되었다. 소설이었던 이야기책들은 ‘판소리’로 불리어졌다.
[풍부한 소리와 가사]
관찰사가 있던 고장으로서 호서 지방의 부자들이 집결하여 살아온 지역적 특성 때문에 소리꾼들이 먹고 살기 편한 곳이었다는 점이 중고제라는 평성(平聲)의 소리재의 중심지로 존재하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적 성향이 구한말 8명창 중의 한 사람인 이동백과 현대 판소리계의 거장인 박동진을 배출한 토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요재와 판소리재가 섞인 소리의 토양은 어느 마을을 가든지 옛 소리가 보존되어 쉽게 불리는 현장의 형태로 존재하게 만들었다.
공주 일원에서 채록되는 경기 민요조의 노래들은 「노랫가락」, 「태평가」, 「청춘가」, 「창부 타령」이 주를 이루고 「엮음수심가」, 「담방귀 타령」, 「베틀가」, 「새 타령」, 「범벅 타령」 등이 보인다. 가사가 긴 것은 「창부 타령」으로, 짧은 것은 「청춘가」, 「노랫가락」으로 불리어진다. 노래를 부르고 즐기는 데는 타 고장과 같이 한 사람의 뛰어난 소리를 즐기기 보다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 노래를 주고받으며 흐름이 끊이지 않는 형태를 즐김으로써 모든 사람이 함께 흥얼거리는 흥을 중요시하였다.
[고사 축원 소리]
고사 소리는 긴 소리재로서 아주 흔하게 채록되는 가사다. 고사 소리는 풍물의 「다드래기 가락」을 반주삼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긴 고사 소리와 짧은 고사 소리로 대별된다. 긴 고사 소리로는 무속적 성격이 강한 「성주풀이 고사 소리」, 마을 신앙의 동제 끝에 부르는 「동네 고사 소리」, 집터를 다질 때나 새집 집들이 때에 부르는 「집터다짐 고사 소리」, 귀(貴)한 집 아들의 돌잔치 날에 대문 밖에서 고사 상을 차려 놓고 불렀다는 「귀딩이 축원 소리」, 열두 달 액막이를 축원하는 「달거리 고사 소리」 등이 있다. 이 소리들은 풍물소리와 어울려 매우 흥겨운 마당으로 불린다.
공주 일원에서 불리는 고사 소리의 특징은 미약한 인간이 위대한 신에게 복을 비는 비나리의 성격보다는 인간이 인간을 소중히 하는 것이 만복의 근원이라는 인식을 느끼게 하는 기원으로, 기도 보다는 덕담(德談)형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충청도의 양반적인 기질이 잘 배어있는 사회정서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고사 소리 중에서 이러한 정서를 가장 내밀하게 표현하는 것은 「달거리 고사 소리」이다. “이월이라 초하룻날 액우다리(액막이)나/ 방콩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많이 많이 볶어가지고/ 이웃집이 노놔(나누어) 먹던/ 콩 주먹이루 막어 내구요”//“팔월이라구두 드는 액운은/ 액운 살을 풀을 적에/ 팔월이라 보름날 올에(올해) 송편 많이 빗어/ 챙기름(참기름) 살짝 발라가지구/ 이웃집에 노놔(나누어) 먹던/ 대접 굽이루 막어내시구요”
「달거리 고사 소리」를 하는 사람으로는 공주시내 산성동의 최정치와 의당면 요룡리의 유왕종, 사곡면 운암리의 권재덕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웃집에 나누어 먹던”이라는 표현이나 “함께 하는”이라는 표현이 7회 이상 반복된다. 다른 고사 소리에서도 “출입하는 낭군을 세상 사람이 화인(꽃을 연상하게 하는 사람)으로 보아주는 것이 복의 근원이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있을 만큼 사람(타인)을 중요시했다는 점이 충청도의 양반정신과 상통하는 정서이다.
[각설이 타령의 탄생지]
「각설이 타령」의 탄생지가 공주·예산 일원이라는 학설은 1987년도 문화재관리국에서 발행한 연구 논문에서도 제기된 바 있듯이, 양반의 고장으로 유명한 공주에는 특이할 만큼 각설이 타령이 흔하게 불린 것으로 보인다. 공주에서 채록되는 각설이 타령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품바 타령」, 「사설 품바」, 「숫자풀이」, 「언문 뒤풀이」, 「월령 품바」, 「거렁뱅이 타령」, 「첫날밤 타령」, 「씹 타령」, 「욕 타령」, 「삼국지 월령」, 「보니보니 타령」, 「화투뒤풀이」, 「애기 그지 품바」, 「한탄 사설」, 「장 타령」, 「잘한다 타령」 등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가사가 다르지만 품바와 장타령을 기본으로 하여 한 두 곡쯤 노래를 해야 소리꾼 대접을 받을 만큼 일반화되어 있다.
[상례와 관련된 의식요]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의식요는 대부분 상례와 관련된 소리들이다. 상례 소리 외에 관혼상제와 관련된 소리로는 제례의 봉축 소리가 있으나 이는 민요라 볼 수 없다. 관례(성인식)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혼인 역시 특별한 민요가 없다. 상례 소리를 제외한 의식 관련 민요로는 상차림의 노래들이 전한다.
예를 들면 「회갑상 차림의 소리」, 「혼례상 차림의 소리」, 「어린아이 돌상차림의 소리」 등이다. 또한 「환갑 노래」라 하여 소리꾼이 회갑집의 자손들을 칭송하는 창부타령재의 민요로, “동네원하는 내 아들이여/ 백년효부는 내 자부(며느리)라/ 금지옥엽 내 손자여(후략)” 하는 소리가 전한다.
공주의 상례 소리는 매우 다양하다. 사람이 죽었음을 알리는 「복부르는 소리」, 상여를 옮기는 「행상(만가) 소리」, 묘를 짓기 위해 흙을 모으는 작업으로 가래질을 하면서 부르는 「성분가래질 소리」, 묘 안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다지며 부르는 「달궁 소리」 등이 있다. 각각의 의식마다 봉축의 소리가 더해진다. 공주에 상여 소리가 다양하게 전래된 것은 조선조 관찰사가 육성하는 담여꾼인 "역담여"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역담여란 조선시대 지방의 관아에서 육성한 상여의 행사꾼과 행상을 이르는 말이다. 한양에서 고관이 사망하였을 때에 한양에서 향리의 선산까지 행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역담여꾼이 필요했다.
이 행상은 몇 시간 단위가 아니라 며칠 동안 계속 되어야 한다. 2~3일 동안 계속 담여를 해야 하는 담여꾼들이 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서 발달한 소리가 「짝소리」와 「겹소리」이며, 소리는 느리게 하면서 발짝은 빨리 뛰는 「잰걸음 소리」 등의 특징적인 소리들이 주류를 이룬다. 공주는 역대의 관찰사가 주재했던 소재지로서 역담여꾼을 육성하였던 마을은 계룡면 경천리였다. 이 마을에서 역담여꾼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타동으로 이사를 가서 요령잽이로 활동하여 시내 각처로 퍼져 나갔다.
[일 노래]
공주 지역은 두레와 명 품앗이가 성행하였던 마을답게 다양한 일 노래가 전한다. 남자들의 작업 공동체는 논일을 주로 하였다. 논농사를 지으며 부르던 일 노래는 봄에 못자리를 하면서 부르는 「번지질 소리」, 논물을 가두기 위해 물을 품어 올리며 부르는 「용두레질 소리」와 「물품는 소리」, 봄에 논두렁 붙이기 가래질을 하면서 부르는 「가래질 소리」와 「논두렁 소리」, 모를 찌면서 부르는 「움켜라 덕쳐라」와 「모방구치는 소리」, 모내기를 하면서 부르는 「상사디여」와 「모내기 소리」 등이 있다.
「김매기 소리」는 「초벌매는 소리」와 「두벌매는 소리」, 「만물매는 소리」가 있다. 가을 탈곡을 하면서는 「바심 소리」와 「자리개질 소리」가 있으며, 벼의 낟알을 전선하면서 부르는 「나비질 소리」와 곡식의 수확량을 헤아리면서 부르는 「말질소리」 등이 있다. 이 모든 소리는 긴소리와 빠른(잦은) 소리로 구성된다. 긴소리는 4분 2박을, 빠른 소리는 2박의 박자로 구성된다. 논농사와 관련된 일 노래는 다음과 같다.
「모찌는 소리」는 공주시 일원에서 모두 불렸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고 반포면과 장기면에는 아직도 부르는 사람이 있다. 후렴은 “뭉치세 또는 뭉처라(뭉처라 뭉처라아~하하~아아하아 뭉치세)”와 “뭉처라 덕쳐라”의 두 종류의 후렴만 보인다.
「모심는 소리」는 거의 모든 마을이 “상사디여(에헤이이어하아~ 상사디야)”를 노래하는데, 앞부분의 흘리는 소리의 길고 짧음의 차이를 보인다. “상사디야” 이외의 소리로는 “에하(에이~~허 어~허)”가 있고 잦은(빠른) 상사가가 있는 마을도 있다.
「논매는 소리」의 후렴은 아주 다양하다. “얼카 덩어리 잘넘어간다. 얼카딩이 산이로다. 얼널러 상사디야. 어허이 둥실 대허리야. 어하 얼러를 가세. 아헤 등이며 잘넘어간다”가 가장 많이 불리어진다. 잦은소리는 일반적으로 같은 후렴을 빨리하거나 “얼널러 방아여. 우여우여” 등이 보이며, 거의 모든 마을에 긴소리와 잦은 소리가 있다.
「가래질 소리」는 「논두렁 가래질 소리」와 「성분 가래질 소리」가 있다. 후렴은 “어허 넝청가래로세. 능청능청 댕겨보세” 두 가지가 보이며, 잦은 소리 후렴은 “쉬이더차” 한 종류다. 「논두렁 가래질 소리」와 「성분 가래질 소리」의 차이는 노랫말에서 차이가 나고 후렴은 같다.
「물품는 소리(용두래 소리)」의 후렴은 수월사하고 메김소리 없이 물퍼올리는 수를 센다. 열 미만의 수는 “하나는 둘이요. 둘은 셋이요 셋은 넷이요” 하며 세어 나가고, 열이 넘으면 “열에 하나요 마흔은 서이구” 하는 식이다. 백은 “한백하여 접고 둘백하니 접고” 다음으로 하나부터 시작한다. 긴소리 잦은 소리 구분은 없다.
「타작 소리(자리개질 소리)」는 ‘들어 왔나’의 충청도 사투리인 ‘둘왔나’ 형태로 “어허 둘왔나. 아헤 왔나 하면 아헤. 어화. 아하헤” 등의 후렴으로 받는 한 가지 유형이다. 볏단을 자리개질 치는 횟수가 소리의 길이를 정하며, 벼가 다 털린 볏단을 집어던지는 소리로는 “나헤”를 쓴다.
「나비질 소리」는 자리개질로 타작해 놓은 곡식의 검불을 바람에 날려 깨끗이 하는데 바람이 없거나 곡식이 많아 자연 바람만으로 어려울 때 키를 휘둘러 바람을 일구고 죽가래로 곡식을 허공에 던져 가벼운 것을 바람에 날려 곡식을 깨끗이 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후렴은 “쉬이더차. 헝게응게. 어하어화” 정도가 보인다. 느린소리와 잦은 소리의 구분은 없다.
여인들이 부르는 일노래는 삼을 빨면서 부르는 「마전질 소리」, 베를 짜면서 부르는 「베틀가」, 방아를 찌면서 부르는 「방아질 소리」와 「방아타령」 등이 있다. 명 품앗이를 하면서 부르는 소리는 「시집살이 노래」가 주를 이르며, 「댕기풀이 노래」, 「며느리 노래」 등을 불렀다. 또한 밭곡식을 탈곡하는 「도리깨질 소리」, 말뚝을 박으며 부르는 「말목치는 소리」, 새각시를 태우고 가는 가마꾼들이 발을 맞추기 위해서 부른 「가마꾼 소리」 등이 있고, 집터를 다지면서 부르는 「터다지는 소리」, 「지달묘 소리」 등이 전한다.
[아이들 노래]
아이들의 노래는 어른이 아이를 위해 부르는 노래와 어린이들이 부르는 소리의 두 종류로 나뉜다. 어른들이 어린아이를 돌보며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 아이들이 혼자 걷기 시작하기 전에 불러 주는 노래들이다. 잠을 재우며 부르는 자장가와 아이가 처음 몸을 일으켜 세우는 ‘섬마’ 소리, 아이가 자국을 옮기는 걸음마 단계에서의 ‘불아’, 우는 아이를 달래는 노래가 주류를 이룬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 놀이와 연관을 갖게 된다. 실내에서 하는 놀이로는 양발을 앞사람의 발 사이에 번갈아 끼우고 앉아 노래를 부르며 발을 세어 노래가 끝나는 부분에 닿은 발을 오무려 마지막 한사람의 술레를 정하는 ‘발세기’와 손바닥으로 손뼉을 치든가 상대의 손바닥을 마주 때리는 행위로 구성된 ‘쎄쎄쎄’ 놀이와 같이 노래가 일정한 동작을 요하며 술래를 뽑는 유형이 많다. 성인들도 즐긴 ‘꼬대각시’, ‘춘향각시’ 놀이처럼 본격적인 앞 여흥을 위해 부르는 노래들도 있으나 이는 흔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밖에서 즐기는 놀이로 파생된 노래는 아주 다양하다. ‘고무줄놀이’, ‘대문 넘기’, ‘어깨동무’, ‘술래잡기’, ‘감추기 장난’처럼 노래가 없으면 놀이를 즐길 수 없는 것도 있으며, ‘술래잡기’처럼 노래 없이도 놀이를 즐기는 데 불리는 노래도 있다. 현대 개념으로 동요에 해당하는 단순한 노래들은 대부분이 어떤 사물의 이름을 생활로 연결하여 노래하는 경우가 흔하다. “십리절반 오리나무/ 방구 뀐다 뽕나무/ 대낮이두 밤나무(나무 노래)”와 “달래먹구 달래구/ 고사리 먹구 고스러지구/ 살구먹구 살찌구/뻣먹구 뻗어라(달래먹고)”와 같이 재미있게 부르는 노래를 통하여 상식을 배우는 계기로 삼았다.
아이들은 동무를 골려주는 데도 노래를 사용했다. 머리를 박박 깎은 아이를 상대로 부른 ‘중중까까중’, 잘 우는 아이를 골리는 ‘울보떼보’, 고자질 잘하는 아이를 놀리는 ‘일러라 찔러라’ 등의 노래가 있었다. 이밖에도 잠자리를 잡으며 부르는 ‘잠자리 동동 파리동동’, 나물을 뜯으며 무르는 ‘한푼두푼이 돈나물’ 등의 노래도 보인다. 아동과 관련된 노래들은 대부분 제목이 없다. 노래들은 첫머리 노랫말을 인용하는 것이 많으며, 이는 타 지역의 동요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