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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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Legend of Rice Cake Covered With Bean Flour and Sailfin Sandfish |
이칭/별칭 | 「도루묵이야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 |
집필자 | 이은칠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서 인절미와 도루메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인절미와 도루메기에 얽힌 유래담으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나 역사적인 사실과 관계되어 공주시 산성동에 전해 오는 임금의 피난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채록/수집상황]
1967년 1월 7일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함. 제보자는 공주시 산성동의 박천일(남)이다.
[내용]
1624년(인조 2) 갑자에 평안병사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당시의 서울인 한양을 침공해왔다. 왕은 하는 수 없이 공주로 몽진(蒙塵)하였다. 왕은 때때로 공산성에 올라 멀리 북쪽에 두고 온 한양을 근심스럽게 바라보곤 하였다. 인근의 부호인 임씨 집에서 한 광주리에 음식을 푸짐하게 담아 왕께 진상하였다. 조심스럽게 덮은 보자기를 걷어내니 콩고물에 무친 떡이 가득 하였다.
인조는 “맛있구려. 그런데 떡은 떡인데 대체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임금은 이 떡을 어느 집에서 만들어왔느냐고 물었고, 사람들은 근처 임씨 집에서 만들었다 했다. 그러자 왕은 “임씨라, 임씨라, 가장 맛있는 떡 절미(絶味), 음 임절미(任絶味)라 하는 게 어떻겠소?” 하면서 좌중을 둘러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그 떡을 ‘임절미’라고 부르게 되었고, 나중에 ‘임’의 ‘ㅁ’이 ‘ㄴ’으로 바뀌어 ‘인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루메기 이야기 또한 인조와 관련되어 있다. 인조는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피란을 떠났다. 떠날 때 먹을 것을 충분히 가지고 간 것도 아니고 피란지에 먹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임금이라도 수라상이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딱한 소리를 듣고 한 어부가 동네 앞바다에서 잡은 ‘메기’라는 물고기를 임금께 바쳤다.
인조는 이 물고기를 아주 맛있게 먹고 그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메기’라고 하자, 이름이 좋지 않다고 하며 즉석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전란이 끝나고 환궁한 뒤 피란지에서 맛보았던 ‘은어’가 생각나서 다시 먹어보았더니 그 감칠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조는 “도로(다시) 메기라 불러라.”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인절미와 도루메기 전설」은 인절미와 도루메기 등 사물의 이름에 관련된 모티프이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지만, 공주시에서는 이괄의 난과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임금의 피난 시절에도 임금을 지성으로 섬기던 백성들의 의식을 알 수 있다. 인절미나 메기의 맛이 궁중 생활이 아닌, 궁핍한 피란 시절에는 어떤 산해진미와도 비교할 수 없었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