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5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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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屬郡 |
영어음역 | Sokgun |
영어의미역 | Secondary Count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경복 |
[정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속군(屬郡)은 속부(屬府), 속현(屬縣) 등으로 구분될 수 있으나 통상 속현으로 총칭된다. 지방관이 파견된 지역을 주현(主縣)이라 하였는데,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을 통하여 인근 속현을 간접 통치하는 주현·속현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공주 지역은 1018년(현종 9)의 관제 변화와 함께 목(牧)에서 지주군(知州郡)의 위치로 격이 낮추어졌고 목사 대신 지주군사가 수령으로 부임하여 왔다. 공주가 지사군이 되면서 거느린 속군은 덕은군(德恩郡), 회덕군(懷德郡), 부여군(扶餘郡), 연산군(連山郡)이다.
이상 4군은 당시 공주에 예속된 속군인데, 지금의 논산, 대전, 부여 등 공주 주변이 공주지군사군의 통할 하에 있었다. 1332년(충혜왕 2)에 이르러 공주는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는데, 이때 목으로 승격된 공주는 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속군 및 속현에 감무(監務)를 파견한 이래 국가에서는 계속해서 수를 줄이려고 노력하였다.
명종, 공양왕 때에도 많은 수의 감무가 파견되었는데, 이러한 작업은 조선 전기에도 이어져 속군과 속현의 독립과 분산이 계속되었다. 이때에는 감무의 파견 이외에도 여러 속군과 속현을 합하여 하나의 주군과 주현을 만들거나 속현을 주현의 직촌(直村)으로 만드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의의와 평가]
속군 및 속현은 17세기경에 모두 소멸되어 개별화된 군현들을 바탕으로 구조적, 지역적으로 일원화된 지배 질서가 성립되게 되었다. 공주의 속군도 조선 전기에 이르러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