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박씨
-
도진리에는 모두 네 곳의 마을길이 있다. 도진1길에서 도진2길로 둘러보는 1코스인 웃마길과 도진3길과 도진4길을 둘러보는 2코스인 아랫마길을 따라 강변에 자리한 양반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문연서원 유허지 는 도진리로 들어오는 지방도 67호선의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모두 5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이 ‘죽연박선생 효행...
-
고령박씨 소윤공파 27세손인 박재흔[1924년생] 씨는 도진마을 최고령자 중의 한 사람이다. 박재흔 씨는 일제 강점기인 1923년 도진마을에서 3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학교 문턱에조차 가 보지 못했다. 땅 한 뙤기 없는 상황에서 박재흔 씨는 집안의 입 하나를 덜기 위해 7세 때부터 남의 집 꼴머슴부터 시작해 과수원 노동, 건축 미장공을 차례로 거...
-
박언성(朴彦成)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고령군 세거 성씨. 고령박씨(高靈朴氏)의 시조는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둘째 아들 고양대군(高陽大君) 박언성이다. 후대에 어사공(御史公) 박섬(朴暹), 부창정공(副創正公) 박환(朴還), 주부공(主簿公) 박연(朴連)을 중시조로 하는 3파가 형성되었고, 여기에서 다시 교수공파(敎授公派), 영참판공파(嶺參判公派), 직강공파(直講公派), 승지...
-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도진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고령박씨들은 고려 후기 고령에 정착한 박경(朴景)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후대에 다시 세 개의 지파(支派)를 형성했는데, 입향조의 고손 박계조(朴繼祖)의 큰아들과 셋째 아들인 박윤(朴潤)과 박택(朴澤), 그리고 둘째 아들 박일(朴溢)의 양자 박정번(朴廷璠)을 파조로 하여 각기 죽연파(竹淵派), 낙락당파...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고령박씨의 정문. 열녀 고령박씨는 양천인 최흠(崔欽)의 처이다. 결혼한 지 20일 만에 남편이 병사하자 시부모 앞에서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다가 남편의 3년 상을 마친 후에 남편의 허리띠로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그의 죽은 모습은 산 사람처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선녀 같은 자태였다고...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는 고령박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고려 후기인 1350년(충정왕 2)경 박경(朴景)이 입향한 이후 고령박씨의 본향을 이루었다. 이후 도진리의 고령박씨 문중은 지금까지 650년간 이곳에서 세거해 오고 있는데, 이 때문에 도진리 박씨들은 다른 문파와 구분하여 자신들을 특별히 ‘도진박씨’라고도 부른다. “고령 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으로는 도진박...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적. 문연서원은 1695년(숙종 21) 박윤과 윤규를 비롯하여 박택(朴澤), 박정번, 최여설(崔汝楔) 등 5인을 향사하였다. 우곡면 월보동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며, 이후 복설하여 문연재(文淵齋)라 명하였다. 문연서원 소장 문적은 서원 훼철 때 소실되었으며, 남아 있던 자료들 중 일부는 ‘고령박씨 소윤공파...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고령박씨 소윤공파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문적. 고령박씨는 고려시대 본관인 고령의 향직을 세습하다 고려 후기 군직(軍職)과 동정직(同正職)을 역임하면서 품관(品官)으로 성장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박형(朴炯)이 세조 대 공신이 되어 실직적인 사족(士族)으로 고령 지역을 대표하는 강력한 재지 사족(在地士族)으로 성장하였다. 고령박씨 소윤공파 문적은 1...
-
도진리는 고령박씨 소윤공파(少尹公波) 집성촌으로서 650년 동안 충효 정신을 부단히 실천해 온 전통의 고장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68세의 나이 차이를 지닌 7세대 종중 성원들이 한 마을에서 오순도순 살고 있다. 모든 게 변한 현대 사회이지만, 지금도 선조들이 남긴 충효 정신은 후손들의 삶 속에서 가정과 마을, 고을을 넘어 국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령군의회 의원을 역임...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선산[一善]. 초명은 세옥(世玉), 자는 문원(聞遠), 호는 모헌(慕軒)·연한당(燕閒堂).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8대조이며, 김종직의 넷째 아들인 김숭연(金嵩年)[1486~1539]이 7대조이다. 김숭연은 일직손씨(一直孫氏) 사이에 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인 김윤(金綸)이 일찍 졸하여 6대조인 김유(金維)[1515~1562]...
-
김종직 선생은 62세이던 1492년(성종 23) 8월 19일 밀양에서 별세했다. 사림파에서는 ‘도덕박문왈문 염방공정왈충(道德博聞曰文 廉方公正曰忠)’의 뜻을 따라 문충(文忠)으로 시호를 삼자고 했으나 훈구파에서는 ‘박문다견왈문 거경행간왈간(博文多見曰文 居敬行簡曰簡)’의 ‘문간(文簡)’을 주장하였다. 결국 훈구파의 주장에 따라 문간으로 시호가 결정되었다. 사림파와 훈구파가...
-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개실마을은 선산김씨[일선김씨]들이 모여 사는 전통 한옥 마을 집성촌이다. 이 마을은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화를 당한 영남 사림파의 종조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후손이 17세기 중반에 정착한 이후 지금까지 350여 년간 대를 이어 오고 있는 곳이다. 이런 연유로 개실마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
고려 후기 고령박씨가 정착한 후 도진리는 박씨들의 세거지가 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진리에는 대가야 시대 유적들이 현재까지 전해 오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도진리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도진리 바위구멍 유적’과 인근 사촌리에 있는 ‘사촌리 고인돌’ 등을 통해 최소한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는 고령박씨(高霊朴氏)의 세거지로 우곡면 소재지이다. 고려 말인 1350년(충정왕 2)대에 조산대부(朝散大夫) 사재감소윤(司宰監少尹)인 고령박씨 박경(朴景)[고령박씨 중조 환(還)의 8세손]이 개척하였는데, 모듬내[会川, 錦川]를 휘감아 흐르는 강변(江邊)의 아름다움이 도연명(陶淵明)[365~427]의 「도화원기(桃...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180년경(명종 10) 주씨가 마을을 처음 개척하여 주진이라 하였고, 그 뒤 병조참의를 지낸 박경이 마을 앞 회천 둑을 따라 복숭아나무가 우거져 절경을 이루고, 강에는 나룻배가 다니는 나루터가 있어서 도진 또는 도원이라 하였다. 도진 남쪽에 있는 새마는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미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고령박씨 동성마을. 도진리에는 도진, 새마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1350년대에 병조참의를 지낸 박경(朴景)이 마을 앞 회천 둑을 따라 복숭아나무가 우거져 절경을 이룬 것을 보고 ‘복숭아 도(桃)’자를 따고, 회천에 한실과 속리·사전으로 건너가는 나루가 있으니 ‘나루 진(津)’자를 따서 도진이라 하였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무릉도원에 견줄 만...
-
고령군의 남단에 입지하고 있는 우곡면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과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과 접해 있다. 원래 고령군 하미면(下彌面)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우곡면으로 바뀌었다. 우곡면은 도진리를 비롯해 답곡리·봉산리·포리·객기리 등 13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도진리는 우곡면의 중앙부에 위치한 우곡면의 면소재지이다. 그런 까닭으로 도진리는 우곡면의 행정,...
-
도진리 토박이 박태곤(朴太坤)[1933년생] 씨는 도진마을 초대 새마을 지도자로서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의 산증인 중 한 사람이다. 박태곤 씨는 1971년 3월 17일 도진리 새마을 지도자로 임명된 후 16년 동안이나 마을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박태곤 씨의 기억으로는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은 1971년 1월 14일 시작되었다고 한다. 박태곤 씨는,...
-
충효마을로 지정된 고령박씨 집성촌인 도진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시월에 5대조 이상의 조상의 묘역을 찾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음력 시월에 지내는 묘제는 흔히 시제, 시향제(時享祭)라고도 하며 조상 숭배, 추수 감사의 뜻으로 조상의 묘에서 지내는 제사를 가리킨다. 이 때 묘제는 기제사와는 달리 문중의 모든 후손들이 모여 기제사의 범위를 넘어선 5대조 이상의 묘소에서 신곡(新穀)으로 음...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민족 독립을 위해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운동가들. 독립운동가들은 개항기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거나 일제강점기에 국내외에서 일제에 저항한 사람들이다. 독립운동의 범위는 한일 병합을 기점으로 앞선 시기에는 크게 계몽 운동과 의병 운동으로 설정할 수 있고, 이후 시기에는 국내외 무장 투쟁, 3·1운동, 노동·농민·학생 운동 등 대중 운동...
-
입향조 박경(朴景)이 마을을 개척한 이후 도진리에서는 수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특히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나 충을 실천했고, 집 안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를 봉행하였다. 그러한 유업들이 쌓여 도진리는 1997년 7월 13일 경상북도 제1호 충효마을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의 대표적인 충효마을로 인정받은 것이다. 1997년 9월에는 ‘고령박씨 소윤공파 문적’이 경...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평지리에 있는 조선 중기 재실. 만남재는 고령박씨의 중시조인 청하공(淸河公) 박지(朴持)의 묘를 수호하고, 종중회의를 열기 위해 마련한 재실이다. 박지의 묘는 만남재의 뒤편 왼쪽 산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박지의 비문은 1728년 그의 11세손이자 조선 후기 문신이며 병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朴文秀)[1691~1756]가 지...
-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 사람들이 설이나 추석 명절에 제물로 사용하거나 즐겨 먹는 음식. 명절음식은 지역성과 계절성을 동시에 갖는다. 고령군과 같은 내륙 농촌 지역은 어촌에 비해 생선류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과일이나 떡, 한과, 육류, 나물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제사 형식에 따라서도 음식의 가지 수나 종류가 다르다. 예를 들면, 떡국제사나 떡제사를 지내는 경우에는 밥제사와는 달...
-
낙동강 지류인 회천(會川) 변에 자리한 도진마을은 예부터 경치 좋고 물 맑은 곳으로 이름나 무릉도원으로 일컬어졌다. 오염되지 않은 토심 깊은 곳에서 자란 농산물로 만든 일상의 먹을거리는 자연의 보약이었다. 여기에다 고령박씨 집성촌으로서 조상들이 다져 놓은 충효 전통은 일족 간, 가족 간의 섬김과 사랑의 정신으로 승화되었다. 이로 인해 도진마을은 충효마을에 더하여 장수촌으...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문연서원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문연서원 터의 문연서원은 1695년(숙종 21)에 학암(鶴巌) 박정번(朴廷璠)의 강학지소(講学之所)로 건립하여 죽연(竹淵) 박윤(朴潤), 낙락당(樂樂堂) 박택(朴澤), 월오(月塢) 윤규(尹奎), 학암(鶴巌) 박정번(朴廷璠), 매헌(梅軒) 최여설(崔汝楔)의 5현을 향사(享祀)하였으나 1868년...
-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 증조할아버지는 참의(參議) 박계손(朴季孫)이고, 할아버지는 울산군수를 역임한 박승로(朴承老)이며, 아버지는 세조의 공신 박형(朴炯)이다. ‘계조(繼祖)’란 이름은 아버지가 나라를 위하여 직무를 다하였다고 하여 세조가 이름을 내려준 것이다. 고령박씨가 입향한 것은 고려 말로 추정된다. 박계조(朴繼祖)의 윗 대 조상들은 고려조 이래...
-
도진리는 고령박씨들의 집성촌이다. 2010년 현재 마을의 전체 호수는 106호이며, 고령박씨는 89호 정도로 전체의 약 90% 정도를 차지한다. 그 외에 곽씨, 김씨, 노씨, 정씨, 한씨 등이 살고 있다. 고령박씨 외의 타성 사람들은 마을에서 식당이나 가게 등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령박씨들은 다른 성씨들에 대해서도 배타적이지 않고 잘 어울려 지낸다고 한다. 그...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에 있는 정자. 벽송정은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정자 안에 통일신라시대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의 시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건립 연대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벽송정은 당시 지방의 유학자들로 구성된 유림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각지의 선비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며 토론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고령에서 합천으로 가는 국도...
-
대가야읍에서 개진면을 지나 모듬내[회천] 변으로 난 지방도 67호선을 따라오면 우곡면의 도진리에 이른다. 낙동강의 지류인 모듬내[회천] 변에 자리 잡은 도진리는 특히 고령박씨[도진박씨]들이 650여 년간 터를 잡고 살아온 곳으로 유명하다. 도진리의 연원에 대해서는, 1180년경 주(朱)씨들이 처음 마을을 개척하고 주진(朱津)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
-
1919년 3월 말~4월 초 고령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3·1운동은 서울에서부터 시작되어 5월 중순까지 비폭력·일원화·대중화 등을 원칙으로 하여 전국에서 발생하였고, 한국인이 거주하는 하와이 등 국외에서도 발생하였다. 대도시에서 농촌에 이르기까지 청년·학생과 지식인, 농민과 노동자, 여성 등 전 민족적 항일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3·1운동의 역량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
-
나라를 위해 충(忠)을 실천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을! 이는 ‘650년의 역사’, ‘고령박씨 집성촌’, ‘경치가 빼어난 무릉도원’으로부터 근년의 ‘우곡그린수박마을’에 더하여 도진마을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또 하나의 별칭이다. 경상북도에서는 유일하게 충효마을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유물의 문화재 지정, 도진충효관 건립, 도원공원 조성 등은 도진리 사람들의 땀의 결실로서 유...
-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의 성씨 제도는 중국 제도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자 문화의 유입 이후인 삼국시대에 나타난다. 고대 국가에서는 주로 왕족이나 극히 일부의 중앙 귀족에게서만 보인다. 성씨 제도가 본격적으로 행해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이다. 나말여초의 격심한 사회 변동에 따른 신분제의 재편성 과정에서 태조...
-
도진리는 고령박씨 집성촌으로 고령 지역의 대표적인 양반 마을이다. 이 때문에 충과 효를 숭상하는 유교적 풍습이 강하게 뿌리내려 기독교가 정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교회가 처음 생긴 것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51년이었다. 도진리에 처음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전한 개척 교인은 당시 우곡고등공민학교[우곡중학교 전신]의 김기윤 교장과 고령읍교회...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례동의 ‘예’자와 부곡동의 ‘곡’자를 따서 예곡(禮谷)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아치실은 고려 초기 아치산[207m] 밑에 형성된 마을로, 지형이 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꿩 혈의 정기를 받는다는 믿음으로 꿩을 보호해 오고 있다. 달리 아치리·아곡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현풍군 답곡면 지역으로 1906...
-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우촌(牛村)의 ‘우’자와 답곡(畓谷)의 ‘곡’자를 따서 우곡면(牛谷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미면(下彌面) 지역으로 도진·사부·저동·대곡·아라·월오·운동·아산·부례·부동·사동의 11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촌면(牛村面)·답곡면(畓谷面)·왕지면(旺旨面)의 일부를 병합하여 우곡면이라 하고 답곡·조지·포동·객기·...
-
경상북도 고령군에 거주하는 주민 또는 집단의 수. 고령군의 인구는 1981년 47,000명에서 2001년 37,000명으로 지난 20년 동안 약 10,000여 명[약 21.1%] 감소하였고, 연평균 증가율은 -1.1%이다. 하지만 인구 감소 현상에도 불구하고 세대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1981년 10,000세대였으나 2001년에는 13,000여 세대로 약 2,600가구[23...
-
개진면을 지나 지방도 67호선을 따라 진입하면 왼쪽으로 모듬내[회천] 변을 따라 길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고령박씨들이 650년간 터를 일구고 충과 효를 실천하면서 살아 온 도진마을이다. 마을로 접어들기 직전의 도로 변 왼쪽에 있는 문연서원 유허지에는 ‘문연서원 유허비’를 비롯해 5기의 비석이 건립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면 버스 정류장이 있고, 그...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박윤이 건립한 조선 전기 정자. 우곡면 도진리 우곡면사무소와 우곡면 보건진료소 샛길로 200여m 지난 마을 끝 야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죽연정사 우측 산기슭에는 1940년 후손들이 건립한 낙락당 박택(朴澤)의 재실이 있는데, 박택는 조식(曹植)과 배신(裵紳)과 교유가 있던 선비로, 학문과 덕행이 고매한 사람이다. 고령인 죽연(竹淵) 박윤(朴...
-
경상북도 고령군에 세거하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집성촌. 집성촌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의 형성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전기부터다. 특히 조선 후기인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적장자 중심으로 상속 제도가 변화하고,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보급되면서...
-
도진마을 모현정에서는 매년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에 옛 문연서원(文淵書院)에서 배향하던 오현(五賢)에 대한 향사를 지내고 있다. 문연서원은 원래 학암(鶴巖) 박정번(朴廷璠)이 세운 서당이었는데, 1696년(숙종 22)에 낙락당(樂樂堂) 박택(朴澤)과 월오 윤규를 배향하는 서원이 되었다. 이후 1700년(숙종 26)에는 죽연(竹淵) 박윤(朴潤)과 매헌 최여설...
-
100호 이상의 집성촌을 이룬 마을! 조선 전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외침에 나라를 구하려는 충(忠)과 부모에 대한 효(孝)가 존재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구비한 마을! 한 명의 큰 인물보다 한 마을, 한 가문 출신으로 충과 효행이 누대에 계승되는 마을! 1350년대 사재감(司宰監) 소윤공(少尹公) 박경(朴景)[중시조 부창정(副倉正) 박환(朴還)의 8세손]이 마을을 개척...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개척 당시 마구실 뒷산에 선녀가 옥가마를 타고 내려왔다 하여 산 이름을 옥녀봉이라 하고, 마을까지 수레를 타고 왔다 하여 하거(下車)라 하였다. 신라시대 어느 임금이 마을 앞을 지나다가 마을 주변 지형이 학처럼 생긴 것을 보고 마을에 큰 연못이 있는지 수레에서 내려 둘러봤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상동면에 속...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고령박씨 동성마을. 마을 앞으로 안림천이 흐르고 공기가 맑고 들이 넓으며 큰 소나무가 많아 매년 학이 날아와 장관을 이루므로 학골이라 하였다. 신라시대 어느 임금이 마을 앞을 지나다가 마을 지형이 마치 학이 나래를 편 모습과 같으므로 마을에 연못이 있는지 수레에서 내려 살펴보았다고 하여 학골 또는 하거라고도 하였다. 또 마을 개척 당시 마을 뒷...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성산배씨 동성마을. 마을 앞으로 안림천이 흐르고 공기가 맑고 들이 넓으며 큰 소나무가 많아 매년 학이 날아와 장관을 이루므로 학골이라 하였다. 신라시대 어느 임금이 마을 앞을 지나다가 마을 지형이 마치 학이 나래를 편 모습과 같으므로 마을에 연못이 있는지 수레에서 내려 살펴보았다고 하여 학골 또는 하거라고도 하였다. 또 마을 개척 당시 마을 뒷...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양천최씨 동성마을. 마을 앞으로 안림천이 흐르고 공기가 맑고 들이 넓으며 큰 소나무가 많아 매년 학이 날아와 장관을 이루므로 학골이라 하였다. 신라시대 어느 임금이 마을 앞을 지나다가 마을 지형이 마치 학이 나래를 편 모습과 같으므로 마을에 연못이 있는지 수레에서 내려 살펴보았다고 하여 학골 또는 하거라고도 하였다. 또 마을 개척 당시 마을 뒷...
-
도진리는 충과 효를 실천한 고령박씨 세거지다. 고려 후기부터 지금까지 650여 년에 이르는 도진리의 역사는 고령박씨 인물들의 충절과 효열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도진리의 입향조 박경(朴景)을 비롯해 그 뒤를 이은 박윤(朴潤)·박택(朴澤) 형제의 효, 박정완(朴廷琬)·박정번(朴廷璠) 형제의 충은 고령박씨 문중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도진의 고령박씨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