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080 |
---|---|
한자 | 邑內場 |
영어음역 | Eumnaejang |
영어의미역 | Eupnae Market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지산리 일원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임경희 |
성격 | 재래시장|정기 시장|오일장 |
---|---|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지산리 일원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와 지산리 일원에서 매 4일과 9일에 개시되던 오일장.
[건립경위]
읍내장은 고령 지역에서 열리던 오일장 중 규모가 가장 큰 시장으로서, 조선 후기부터 대가야읍 관문 밖 동쪽 1리쯤에서 대가야읍내에서 개설되었다.
[변천]
관문 부근에서 서던 읍내장은 1868년(고종 5) 장기동(場基洞)[현 대가야읍 장기리]으로 옮겨졌다. 장기동에서 열리던 시장은 1906년(고종 43)부터 다시 내시(內市)와 외시(外市)로 나뉘어졌는데, 내시는 매 9일 읍내 쾌빈동[현 대가야읍 쾌빈리]에서, 외시는 매 4일 원래의 장기동 장터에서 열렸다.
장기동에서 개설되던 시장은 1920년 대홍수로 인해 침수되고 폐허가 되어 쾌빈리와 지산동 일원으로 옮겨져 열렸으며, 1941년 이후 현재의 고령종합시장이 위치한 곳에 자리 잡아 공설 시장으로 운영되었다. 이때까지 시장은 시가지 중앙에서 도로 양쪽에 작은 가게를 지어 개설하고 나중에 철거하도록 하였다. 이후 읍내장의 전통은 고령종합시장에 이어졌다.
주요 거래 품목은 쌀, 콩, 밀과 보리, 면포, 면화. 마포, 명주, 유기, 토기, 버드나무 제품, 나무 제품, 돗자리, 밤, 대추, 건시, 연초, 소와 송아지 등이었지만 점차 농산물, 수산물, 직물, 가축류, 신탄(新炭)류, 농기구 등 공산물과 잡화류로 바뀌어 거래되었다. 상인의 왕래 구역은 고령 지역뿐만 아니라 성주, 합천, 거창, 부산, 대구에까지 걸쳐 있었고, 장기동 읍내장 주변에는 80여 개의 점포와 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거래액도 1909년에 이르면 연간 36만 원으로 대구 서문시장 총거래액의 1/3에 이를 정도로 번성하였다. 이는 상주의 상주장(尙州場), 비안(比安)의 안계장(安溪場)과 맞먹는 규모이며, 경상북도 내 10대 시장에 포함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