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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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효부. 남평문씨는 남편이 이른 나이에 사망한 이후 시부모를 정성껏 모신 효부였다. 김권추 처 남평 문씨는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 가문 출신으로, 1897년(고종 34)에 태어나 1955년에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문종보(文鍾輔), 할아버지는 문봉성(文鳳成), 증조할아버지는 문기환(文箕煥)이며, 외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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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옥구현]에 세거한 성씨. 조선 시대 남평문씨(南平文氏) 중의 한 파가 옥구에 세거하였고, 또 다른 한 파가 임피에 세거하였다.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는 15세기에 옥구현 세장리에 입거한 문헌(文獻)과 그의 후손들이고, 임피에 세거한 남평문씨는 15세기 말이나 16세기 초 무렵에 임피현 월하리 서황동에 입거한 문희(文熙)와 그의 후손들이다. 문헌의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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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남평문씨는 군산 지역에 세거한 남평문씨 호부사공파 출신이며, 17세에 군산에 세거한 두릉 두씨 두재하에게 시집을 갔다. 신혼 직후부터 남편이 병이 깊어 병 수발을 드는데 전념을 다하였으며, 남편이 죽고 나서는 물 한 모금도 먹지 않고 죽으려 하였으나 시부모가 만류하자, 조카를 입양하고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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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임피현] 출신의 열녀. 남평문씨(南平文氏)는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 시중공파 출신으로, 옥구에 세거한 신의균에게 시집을 갔다. 남편이 기이한 질병에 걸리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였고, 다리 살을 베어 다리어 주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주혈하여 생명을 연장시켰다. 유림들이 그 열행을 기록한 효열비를 건립하였다. 남평문씨는 옥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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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임피현]에 형성된 남평문씨 집성촌. 서황 마을은 남평문씨(南平文氏) 문희(文熙)가 경기도 장단에서 임피로 이주하여 정착한 곳으로, 봉황을 길들인다는 뜻에서 붙어진 이름이다. 서황 마을에는 문서당이 있는데, 문희가 건립한 사당으로, 이후 화수정이라고 하였다. 호남에서 과거를 보러 서울에 가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가는 휴식처로도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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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효부 남평문씨(南平文氏)는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 시중공파 출신으로, 옥구에 세거한 담양 전씨 참판공파 참의공파 출신 전만배(田萬培)에게 시집을 갔다. 병든 남편의 병 간호를 정성을 다하여 하였고, 남편이 사망한 이후 홀로 된 늙은 시어머니를 정정껏 봉양하였다. 이에 유림들이 효열비를 세웠는데, 그 효열비가 지금도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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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효부. 남평문씨(南平文氏)는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 시중공파 출신으로, 전병순(田炳淳)에게 시집을 갔다. 남편이 깊은 병에 걸리자 병 간호를 극진히 하였으며, 남편이 사망한 이후 늙은 시아버지를 더욱 공경하였다. 이에 유림들이 효열비를 세웠는데, 그 효열비가 지금도 남아 있다. 남평문씨는 문익점의 후손이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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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 효부. 남평문씨(南平文氏)는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 시중공파 출신으로, 옥구에 세거한 담양 전씨 참판공파 참의공파 출신인 전익성(田益成)에게 시집을 갔다. 시부모를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으며, 남편이 병이 들자 사방으로 약을 구하여 마침내 남편의 병을 낫게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정려를 세울 것을 명령하였고, 당시에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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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군산[옛 옥구현] 지역에 세거한 남평문씨 시중공파 집성촌. 남평문씨(南平文氏) 시중공파(侍中公派)는 15세기에 문헌(文獻)이 단성에서 옥구로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옥산면 남내리 일대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으며, 조선 시대 옥구 지방의 5대 성씨 중에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평문씨(南平文氏) 시중공파(侍中公派)의 집성촌이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