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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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愍公全尙毅將軍旌閭閣遺墟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산 23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재훈 |
건립 시기/일시 | 1982년 - 충민공전상의장군정려각유허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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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64년 11월 - 충신각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6년 - 충신각 철거 |
현 소재지 | 충민공전상의장군정려각유허비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산 239 |
성격 | 유허비 |
양식 | 석비 |
재질 | 대리석 |
소유자 | 천안전씨 문중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전상의 장군의 뜻을 기린 비.
[개설]
충민공(忠愍公) 전상의(全尙毅)[1575~1627]는 전라도 광주 지역 출신으로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이후, 선전관 등의 관직을 거쳐 1625년(인조 3)에는 구성부사(龜城府使) 겸 평안도 좌영장(左營將)이 되어 북방에 주둔하였다. 1627년(인조 5) 발발한 정묘호란 당시 후금군의 포위 공격을 받던 안주성을 방어하던 중 평안병사(平安兵使) 남이흥(南以興), 안주목사(安州牧使) 김준(金浚)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 이후 당시의 공을 인정받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전상의 사후 57년이 지난 1684년(숙종 10) 숙종의 명령으로 특별히 정려가 내려지고, 김준의 사묘에 함께 배향하게 하였다. 당시 내린 정려는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화산마을에 보호각인 충신각(忠臣閣)과 함께 서 있었으나 1946년 철거되었다. 1982년 후손들이 이러한 경위와 그 뜻을 기리고자 충민공전상의장군정려각유허비(忠愍公全尙毅將軍旌閭閣遺墟碑)를 옛 충신각 자리에 세웠다. 이후 유허비가 세워진 곳이 제2순환로 공사 지역에 포함되면서 전상의 장군 묘소 인근의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건립 경위]
1982년 충민공 전상의의 뜻을 기리고자 세웠다.
[위치]
전상의 장군 묘소 인근인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산 239에 있다.
[형태]
넓은 장방형의 판석을 지석으로 삼고 무궁화가 새겨진 비좌를 올린 뒤 비신을 꼽았다. 그리고 그 위에는 용과 구름무늬 연꽃 등이 새겨진 이수를 올렸다.
[현황]
비문은 양성인(陽城人) 이종일(李鍾日)이 지었고, 천안후인(天安后人) 전운령(全雲靈)이 썼다.
[의의와 평가]
충민공전상의장군정려각유허비는 충민공 전상의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구국의 정신과 충절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