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0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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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樞 |
영어공식명칭 | Jeong Chu |
이칭/별칭 | 뗀추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유하 |
[정의]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작곡가이자 민속음악학자.
[개설]
정추(鄭樞)[1923~2013]는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출생하였다. 전라남도 광주 출신 작곡가로 광주, 평양, 러시아 모스크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활동하였던 음악가이다.
[활동 사항]
정추는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창씨개명과 우리말 사용 문제로 일본인 교관과 충돌하여 퇴학당하고 양정고등보통학교[지금의 양정고등학교]로 전학하여 1940년 졸업하였다.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예술과에서 윤이상의 스승이기도 한 파리음악원 출신 이케노우치 도모지로[池内友次郎]에게 작곡을 배웠으나, 1943년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1946년 나운영과 민족음악협회를 결성하였고, 1947년 형[정준채]이 있는 평양으로 건너가 평양 국립영화촬영소 음악과장을 역임하였으며, 1951년 평양음악대학 교수가 되었다. 1952년 북한의 국비 장학생이 되어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국립음악원에 유학하였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국립음악원에서는 아나톨리 니콜라예비치 알렉산드로프에게 지도받았으며, 1958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956년 북한의 체제를 반대하다 북한의 소환 명령을 받았으나 귀국하지 않았고, 졸업과 함께 소련 정부에 망명을 신청하였다.
정추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정착한 후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1975년 소련작곡가동맹 정회원이 되었다. 1979년 카자흐스탄 국립사범대학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민속음악을 채보하면서 작곡가에서 점차 민속음악학자로 활동을 전환하였다. 카자흐스탄 국립사범대학 음악학부 전임강사를 거쳐 정교수로 활동하다 1990년 정년퇴임을 하였으며,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정착하여 남은 생애를 작곡가와 교수, 민속음악학자로서 활동하였다. 2013년 6월 13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정추의 작품으로는 1957년 칸타타 「고대수도」, 1957년 교향악 「조선적 주제에 의한 교향조곡」, 1957년 교향시 「조국」, 1968년 교향시 「향토」, 1971년 연극 음악 「희망의 오솔길로」[고려연극단], 1972년 교향곡 「극적 교향조곡」, 1975년 연극 음악 「봉이 김선달」[고려연극단], 1975년 가극 「아리랑」[국립 고려극장 가무단], 1977년 교향곡 「조곡 풍년절」 등이 있다. 1979년에는 박사 학위 논문으로 「소련 한인의 가요 문화에 관한 연구」[카자흐스탄 국립사범대학]를 발표하였다.
정추가 발간한 책으로는 1970년 독창 가곡집 『젊은이의 노래』, 2005년 『(소비에트시대)고려인의 노래: 정추 교수 채록』1, 2, 3[한양대학교 출판부]이 있다. 또한 『혁명 창가집』, 『고려인 창가집』, 최승희 작·무용 민족극 「사도성의 이야기」 총보(總譜), 김순남에 관한 자료 등 한국 음악사의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였다.
[묘소]
카자흐스탄 알마티 근교 부른다이 공동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해외한국인 기록문화상, 2002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이 수여되었으며, 2004년 KBS 해외동포상 예술 부문을 수상하였다. 한·러 수교 20주년 특집으로 2010년 1월 「미행, 망명자 정추」가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