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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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自治將軍-龍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염승연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년 8월 19일 - 「오자치 장군과 용마 바위」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서봉마을에 거주하는 강석구의 이야기를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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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오자치 장군과 용마 바위」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광주의 전설』에 수록 |
관련 지명 | 오자치 용마 바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지평리 |
채록지 | 서봉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
성격 | 설화|지명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오자치 |
모티프 유형 | 교만|반성|유래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오자치 장군과 용마 바위에 대한 이야기.
[개설]
오자치 장군과 장군의 용마에서 유래된 용마 바위에 대한 전설이다. 오자치가 자신의 잘못으로 죽은 용마를 위해 자연석을 쪼개 용마 바위를 세웠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서봉마을에서 강석구[남, 67세]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1990년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하였다.
[내용]
오자치는 나주오씨(羅州吳氏)이며, 힘이 세고 용감한 장군이었다. 오자치는 조선 전기 무신이자 공신으로, 1426년 전라도 나주에서 출생하였다. 오자치는 세조(世祖)[재위 1455~1468] 때 무과에 급제하였고, 1467년에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여 적개공신(敵愾功臣)에 공훈되어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렇듯 오자치는 나주오씨 가문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로 인정받았다.
오자치가 용마를 타던 중 용마와 내기를 걸었다. 오자치가 쏜 화살보다 용마가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면 용마의 목을 치는 내기이었다. 오자치가 화살을 쏘고 용마가 빠르게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도착지에 화살이 보이지 않았다. 오자치는 이를 보고 말이 화살보다 느린 것으로 생각하고 말의 목을 쳤다. 그러나 목이 잘린 말머리 위에 오자치가 쏜 화살이 박히면서, 오자치는 말이 화살보다 빨리 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오자치는 죽은 말을 기념하기 위해 손수 자연석을 쪼개 용마 바위를 세웠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지평리에 '오자치 용마 바위'가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오자치 장군과 용마 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교만에 대한 반성'이다. 오자치는 용마와 내기를 하였고, 자신이 쏜 화살보다 느리다고 생각한 오자치는 용마의 머리를 베었다. 용마가 자신의 능력에 미치지 않으면 자신의 용마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오해였음을 알게 된 오자치는 자신의 교만으로 말이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오자치는 이를 뉘우치는 의미에서 자신이 직접 바위를 깨어 용마 바위를 만들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오자치가 자신의 교만을 반성하기 위해 만든 용마 바위의 유래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