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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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山洞大也-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 548-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혜정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던 대야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이었던 선돌.
[개설]
대야마을은 마을이 크다고 하여 '대몰', '댓말'이라고도 불렀다. 마을은 대(大) 자 모양을 띠고 있어 대야(大也)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대야마을은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일대의 도야마을에 살던 상산김씨(商山金氏) 김연선이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아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위치]
대산동 대야마을 선돌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선돌 가까이에 논이 인접해 있고 물이 흐른다.
[형태]
선돌의 모양은 상협하관(上狹下寬)의 모습이며, 크기는 높이 160㎝, 폭 50㎝, 두께 40㎝이다.
[의례]
선돌의 원래 위치가 논 가까이 있었기에 물이 마르지 않을 것과 농경의 풍요를 기원했던 대상물의 역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황]
현재 위치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논에 있던 것을 옮겨 와 하부를 시멘트로 견고하게 다진 뒤에 세웠다. 당시 망월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에서 선돌을 몰래 가져가려고 하다가 발각되어 대야마을 주민들이 논과 인접해 있고 가까이 물이 흐르는 곳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선돌을 다시 조성할 때 마을 주민들이 치성을 다하여 돼지머리와 막걸리로 제를 지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대산동 대야마을 선돌을 이전하여 조성할 때 마을 주민들이 제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신앙의 대상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