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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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道 |
영어공식명칭 | Railway |
이칭/별칭 | 철길,철로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희철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철로 위에 차량을 운전하여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는 설비 및 수송 체제.
[개설]
철도는 침목 위에 철제의 궤도를 설치하고, 그 위로 차량을 운전하여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는 시설이다. 자동차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도시의 수송 및 이동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지금도 중장거리 운송수단으로 여전히 필수적인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위기 대응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수단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변천]
철도는 거의 유일하게 사람과 물자를 대량으로 운송하는 근대적 교통수단이었으므로, 일제는 한국에 대한 본격적인 지배를 위해 1900년대 초부터 도로와 철도의 부설을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다루고 있었다. 대한제국에 대한 통치 강화, 대한제국 사람과 물자의 일본으로의 이동 등이 그 가장 큰 배경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목포부사는 조선 철도의 연혁부터 호남선의 개황, 기공에서 개통까지의 경과 등을 모두 수록하고 있다. 호남선 부설 이전 대한제국시대인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첫 증기차 운행이 시작되었고, 1904년 경부선이 영업을 시작하였다. 각각 경인철도합자회사, 경부철도주식회사가 사업주체로 나섰으며, 러일전쟁으로 1905년 군사철도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경의선과 마산선[삼량진-마산]이 급설되었다. 1906년에 경부선이 국유화되고 경의선과 마산선 역시 육군성 소관으로 인계되면서, 철도 관리는 통감부 철도관리국 소관이 되었다.
호남선은 1914년 1월 11일 영업이 개시되었는데, 사실상 1913년부터 각 노선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본선은 경부선 대전역에서 출발하여 계수원~두계~논산~강경~충남옥야~만경강 우안의 이리~전주평야를 종단하고, 김제평야 동측을 지나 전라남북도의 경계를 넘어 광주의 평야로 나와, 전라남도의 도청소재지였던 광주의 서쪽 3리[약 1.2㎞]에 있는 송정리를 거쳐 나주~영산포~학교 등의 여러 읍을 지난 뒤 목포에 도달하는 총 연장 161리8분[약 64㎞]의 노선이다. 1910년 5월 대전부터 측량에 들어가 6월 대전건설사무소를 설치하고 10월 공사에 착수하였으며, 1911년 3월 목포에 건설사무소를 설치, 10월 목포 방면의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기한은 애초 11년에서 5년, 다시 3년으로 축소되었으며, 건설비는 차량비를 제외하고 884만 8742원이었고, 그 외 물품 비용 3만 2359원이 소요되었다.
송정리에서 분기해 광주와 담양으로 통하는 광주선은 1922년 12월 개통해 1928년 1월 국유화되었고, 8개 역을 갖고 있었다. 각 역의 1927년의 실적은 승객 승차 45만 9959명, 하차 46만 2620명, 화물 발송 2만 9344톤, 도착 4만 6142톤 등이었다. 경성과 목포를 잇는 호남선은 광주의 철도시대를 열었다. 광주선과 광여선은 광주의 도시 공간구성의 기본 축이 되었고, 행정 중심도시였던 광주를 상업도시로 변모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 1927년 광주선의 실적에서 볼 수 있듯 광주선은 물자보다는 사람의 이동이 그 중심 기능이었다. 그러나 목포부사에서 밝힌 철도 부설 방침 중 일부는 당시 조선총독부의 열악한 경제적 여건 등으로 실제 기공에는 미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한편 광주선은 종점 담양에서 다시 연장해 곡성, 구례에 이르고, 군산, 전주, 순천선과 전라북도 원촌(院村)에 연결시킬 예정이었다. 사설 남조선철도주식회사선은 목포 용당에서 순천에 이르는 84리[약 33㎞], 순천에서 여수에 이르는 24리[약 9.4㎞], 용소(龍沼)에서 영산포에 이르는 24리 7분[약 9.7㎞], 보성에서 광주에 이르는 35리 7분[약 14㎞], 모두 합쳐 168리 4분[약 66.1㎞]으로 부설해야 했으며, 여수~순천~벌교~보성~화순~남평~광주를 잇는 선은 1930년 개통되었다. 또 송정리역에서 법성포에 이르는 33리[약 13㎞]를 건설하기 위해 전라철도주식회사 설립 계획도 있었고, 위와 별도의 사설 궤도로 호남선 학교~함평 간 3리 8분[약 1.5㎞]의 노선이 1926년 11월 업무를 개시하였다.
앞서 설명한 호남선의 일제강점기 개략적인 연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14년 1월 목포에서 개통식을 가졌는데, 광주-송정리 간의 철도는 그보다 약 7년 후인 1921년 4월 남조선철도주식회사의 경영으로 착공하여, 이듬해인 1922년 7월에 개통하였다. 그리고 광주-담양 간은 역시 1921년 7월 착공하여 1922년 12월에 운전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광주-담양 간의 철도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물자난으로 일본인에 의해 철거되어 1965년까지 복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광주-여수 간의 철도는 남조선철도회사의 경영으로 1928년에 착공하여 1934년에 완성하였다. 그러나 광주를 기점으로 한 철도는 없었고, 송정리, 순천 간의 소위 광주선이 통과하고 있었을 뿐이다. 철로는 단선으로 되어 있었고, 남광주역과 효천역, 북광주역은 통과역에 불과하지만, 광주역은 서울을 비롯하여 순천, 목포, 복암 등 각지로 향한 출발점이 되고 있었다.
당시 동구 대인동 2번지에 자리하고 있었던 광주역은 1922년 7월에 전남철도주식회사에 의해 개설되었고, 1923년 9월에 남조선철도주식회사와 합병해 운영되던 중, 1928년 국철로 매수되었다. 광복 이후 국영철도였으나 6.25전쟁으로 역사가 전소되어 1951년 1월 가역사를 마련하였고, 1961년 1월에는 지금의 역사를 준공하였는데, 구내의 총 면적은 8만 4486㎡이다. 구내에는 열차사무소, 운전사무소, 보선사무소 등이 있었다. 광주역의 이전은 1939년 광주시가지계획 결정 당시부터 고려되었던 사안이었다. 광복 이후 광주역 이전을 포함한 도심구조 개편, 즉 토지구획정리사업 제1지구를 통한 시가지 개발 및 확장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50년대 후반이었다. 내무부는 1958년 토지 제14호를 통해 제1지구에 대한 사업시행인가를 하고, 그와 결부되어 1959년 말 광주역 이전의 건의안이 광주시의회에서 가결되는 등 이전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상당한 규모의 예산이 수반되고 중앙정부의 협조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철도 관련 사업이라는 한계 속에 이 사업은 상당 기간 연기되었고, 다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65년의 일이었다.
송정~광주~남광주~효천으로 이어지는 경전선 광주 구간에 변화가 시도된 것은 그 후로 상당 기간이 지난 1989년의 일이다. 당시 광주시와 철도청은 광주시 도심가를 부채꼴로 통과하는 광주~남광주~효천 구간 도심철도 문제와 관련하여 폐선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로써 사실상 광주역은 종착역이 되었으며, 서광주역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철도청은 1990년 철도이설공사 실시설계, 교통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등을 완료하고, 1995년 비로소 광주광역시 도심철도 이설공사를 착공하였다. 폐선부지 연장 10.8㎞, 면적 15만 8678㎡는 지역 내 협의를 거쳐 선형공원인 푸른길공원으로 탈바꿈하여 2010년 초 준공되었다. 2004년 4월 1일 고속철도[KTX]가 운행을 개시하였으며, 2015년에는 호남고속철도사업의 1단계 오송~광주송정 구간이 개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