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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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州衡平靑年會 |
영어공식명칭 | Gwangju Hyeongpyeong Youth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손영님 |
[정의]
1926년 2월 18일 광주광역시에서 백정들이 결성한 청년 단체.
[설립 목적]
천민 신분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법적인 해방이 되었다. 하지만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여전히 존재했고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별도로 호적관리를 하였다. 이에 광주형평청년회는 발기인 유혁(柳赫) 등을 중심으로 형평의식이 공고한 청년들의 계급적 단결과 대중본위의 신사회 건설을 촉구하며 창립되었다.
[변천]
광주형평청년회는 1926년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고 사회신분 해방을 위해 광주의 백정들이 결성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3년 백정들의 차별 대우 개선을 위한 형평운동(衡平運動)은 진주에서 형평사(衡平社)가 조직되면서 전개되었다. 전라남도에서 가장 먼저 형평사의 지사가 창립된 곳은 바로 광주였다. 광주형평사는 1923년 5월 15일 북문통 만성암에서 지사장에 남치풍(南致豊), 고문에 서정희(徐廷禧)가 임명되고 백정 30여 명이 모여 조직되었다. 하지만 광주형평사의 활동은 활발하지 못하던 중에 사회주의의 움직임이 일어날 때 새롭게 조직되었다. 그 결과 1926년 2월 광주형평청년회는 사회운동 단체의 지지를 받으며 창립되었다.
광주형평청년회는 독서회, 강연회, 토론회, 강좌, 야학회 등을 개최하여 과학적 상식과 계급의식을 각성하고 보급하였으며 농민, 노동자 등 무산계급과의 연대를 강조하였다. 1933년 일본은 형평청년전위동맹이라는 허구의 조직을 비밀결사 조직으로 규정하고 이 혐의로 회원들을 구속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광주형평청년회는 그 기반을 잃고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광주형평청년회는 전라남도에서 형평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무엇보다 형평운동에 대해 반감이 없도록 지역민들과의 유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광주형평청년회는 백정의 신분해방 차원만이 아니라 대중의 사회 신분해방까지 그 성격을 확장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