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군
-
상고 시대부터 개화기 이전까지 전라도 광주 지역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문학 작품.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언어에는 말로 이루어진 음성언어와 글자로 이루어진 문자언어가 있는데, 이에 따라 문학에는 말로 전하여 오는 구비문학과 문자로 전승되는 기록문학이 있다....
-
광주광역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조선 후기 인조 때의 공신 정충신의 비범한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 조선 후기 인조(仁祖)[재위 1623~1649] 때의 공신인 정충신(鄭忠信)[1576~1636]의 어린 시절의 비범함을 알 수 있는 세 가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들은 당시 광주목사이던 권율 장군과 관련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과 동구 충장동을 연결하는 도로. 금남로는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에 있는 발산교를 기점으로 동구 충장동에 있는 한일은행[지금의 우리은행]사거리를 경유하여 충장동의 전일빌딩 앞을 종점으로 잇는 왕복 4~8차선의 도로이다....
-
전라남도 광주의 역사에 있어서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남로를 배경으로 김준태가 지은 시. 김준태(金準泰)[1948~]는 시 「금남로 사랑」에서 금남로를 사랑과 평화, 그리고 조화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거리로 묘사하면서 '어머니[자연]'에 비견될 만한 풍요로움과 조화로움의 거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금남(錦南)’이란 지명은 조선 중기 무신인 정충신(鄭忠信)의 군호인 금남군(錦南君)에서 유래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금남로3가(錦南路三街)는 북쪽으로 궁동 일부, 동쪽으로 궁동 일부, 남쪽으로 금남로2가 일부, 서쪽으로 충장로3가와 접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금남로5가(錦南路五街)는 북쪽으로 북동 일부, 대인동 일부, 동쪽으로 대인동 일부, 남쪽으로 충장로4가 일부, 서쪽으로 누문동 일부와 접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금남(錦南)’이란 지명은 조선중기 무신인 정충신(鄭忠信)의 군호인 금남군(錦南君)에서 유래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금남(錦南)’이란 지명은 조선 중기 무신인 정충신(鄭忠信)의 군호인 금남군(錦南君)에서 유래되었다....
-
광주광역시에 속하는 자치구. 동구는 광주광역시 남동부에 있는 자치구로, 광주의 원도심 지역이다. 북쪽으로 광주광역시 북구와 인접하고 있으며, 남쪽과 동쪽으로는 전라남도 화순군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광주천을 경계로 서구와 접하고 있다....
-
근대 학자 김태석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글. 「서석기(瑞石記)」를 지은 김태석(金泰錫)[1872~1933]의 호는 난계(蘭溪),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저서로 『난계유고(蘭溪遺稿)』 4권 1책이 있다. 「서석기」는 권2에 수록되어 있다....
-
고려 말기의 무신으로 문하평리, 판개성부사, 해도도원수, 양광·전라·경상도절제체찰사 겸 총초토영전선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정지(鄭地)[1347~1391]는 고려 우왕 때 왜구가 침입하였을 때 수군을 정비하고 화포 공격으로 왜구를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고려의 수군 창설자로 추앙받는 장군이다. 경상남도 남해 관음포전투에서 정지가 세운 공을 기려 경상도·전라도 사람들이 탑을 세워...
-
고려 후기 나주 출신으로 전라도와 광주 지역 등에서 활동한 무신. 정지(鄭地)[1347~1391]의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초명은 정준제(鄭准提)이다. 정지의 아버지는 정리(鄭履)이고, 아들은 정경(鄭耕)이다....
-
조선 전·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진무공신에 책봉된 무신. 정충신(鄭忠信)[1576~1636]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정지(鄭地)의 9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임피현령(臨陂縣令)을 지낸 정천(鄭荐), 할아버지는 정석주(鄭錫柱), 아버지는 정윤(鄭綸)이고, 어머니는 이인조(李仁祚)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부인...
-
광주광역시 북구 청옥동에서 전해오는 금남군 정충신의 태몽과 출생에 관한 이야기. 금천군(錦川君) 정윤(鄭綸)은 무등산을 삼키는 꿈을 꾸었다. 정윤은 예사롭지 않은 태몽임을 직감하고 부인과 동침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고, 관비와 동침하여서 금남군(錦南君) 정충신(鄭忠信)[1576~1636]을 낳았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