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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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일본인 거주자가 많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이 지정면으로 설정된 역사. 일제는 1914년 4월 부제(府制)와 면제(面制)를 새로 도입하였다. 새로운 지방 행정제도에 따라 전국이 13도, 12부 220군, 2522면으로 재편되었다. 이때 광주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이었다. 또한, 1917년에는 지정면(指定面) 제도를 도입해 인구가 많고 상공업이 어느 정도 발달해 도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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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남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남쪽은 '진남문(鎭南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진남문의 '진남(鎭南)'은 "남쪽을 누른다"는 뜻인데, 여기서 남쪽은 일본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는 광주처럼 남문을 진남문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았다. 1896년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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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지역에 건립된 조선시대의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가 되었던 광주읍성 옛터. 1979년에 간행된 『광주시사』에 의하면, 광주읍성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 있었던 1909년부터 1918년 사이에 헐고 도로를 개설하여 신시가지를 조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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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2월 18일 광주의 백정(白丁)들이 결성한 청년 단체. 천민 신분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법적인 해방이 되었다. 하지만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여전히 존재했고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별도로 호적관리를 하였다. 이에 광주형평청년회는 발기인 유혁(柳赫) 등을 중심으로 형평의식이 공고한 청년들의 계급적 단결과 대중본위의 신사회 건설을 촉구하며 창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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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내에 사람과 물자 수송을 위해 건립된 길. 도로(道路)는 사람, 차 따위가 잘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이다. 광주광역시에서 도로의 시작은 언제부터인지 확인이 어렵다. 원도심을 구성하는 유사한 패턴의 도로망이 통일신라시대 9주 5소경이었던 지역에서 일부 발견되는 것을 보면, 도로의 역사는 대단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12년 작성된 지적원도에 이미 자동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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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내에 사람과 물자 수송을 위해 건립된 길. 도로(道路)는 사람, 차 따위가 잘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이다. 광주광역시에서 도로의 시작은 언제부터인지 확인이 어렵다. 원도심을 구성하는 유사한 패턴의 도로망이 통일신라시대 9주 5소경이었던 지역에서 일부 발견되는 것을 보면, 도로의 역사는 대단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12년 작성된 지적원도에 이미 자동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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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1가와 충장로5가를 연결하는 도로.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장 김덕령(金德齡)[1568년~1596]의 시호인 충장을 도로명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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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동에 패션업, 요식업 등이 밀집된 상점 거리 충장로(忠壯路)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시호에서 따온 것으로서, 1947년부터 거리 이름이 되었다. '광주의 명동거리'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광주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