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문. 고씨삼강문은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다.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고경명의 동생인 고경형(高敬兄),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高從厚)[1554~1593]와 고인후(高因厚)[1561~1592], 딸인 영광유생 노상룡(盧尙龍)의 부인, 고경명의 조카 고거후(高巨厚)의 부인인 광산정씨, 고경명의 손자 고부금(高傅金) 총 7...
-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동 덕림사 명부전에 있는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및 그 권속 26구. MBC광주문화방송 건너편에 자리한 덕림사(德林寺)는 원래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松廣寺) 말사였다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禪雲寺)의 전법도량으로 소속을 변경하였다. 덕림사 명부전(冥府殿)에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과 시왕상(十王像), 권속(眷屬) 등 총 31구가 봉안되어 있는데...
-
1660년 광주향교(光州鄕校)의 유안(儒案)에서 56명의 명단을 삭제한 사건. 광주향교 유적도할 사건은 1660년(현종 1) 누군가가 광주향교에 보관된 유안에서 유생 56명의 명단을 삭제한 사건이다. 유안을 훼손한 사람이 누구인지, 사건 후 처리 과정에서의 광주향교 내 갈등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등에 관해서 알 수 없다....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문. 문장갑과 문장섭 형제는 지극한 효자였다. 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2년 동안 정성으로 간호하였는데, 많이 아플 때는 본인들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례(喪禮)의 제도에 따라서 장사를 지냈다. 주변 마을 사람들로부터 효자라고 칭송되어지고, 나라에서 문장갑, 문장섭 형제의 이와 같은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66년에...
-
광주광역시 광주향교 명륜당의 중수를 기념한 조선 후기의 비. 명륜당중수비는 광주목사 조철영(趙徹英)[1777~1853]이 광주향교 명륜당과 동재, 서재를 중수하면서 세운 비석으로, 조철영의 종증조제인 조인영이 중수기문을 썼다....
-
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 양과동정(良苽洞亭)의 건립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뚜렷한 자료가 없어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에 있는 국왕이 내린 사제문을 새긴 현판. 「열성조사제문다록(列聖朝賜祭文茶錄)」은 사액(賜額) 사우(祠宇)인 포충사 제향 때 역대 국왕이 내린 사제문을 새긴 현판 2개이다. 포충사 유물 전시관에 보관된 사제문 현판은 1603년(선조 36), 1605년(선조 38), 1623년(인조 1), 1734년(영조 10), 1772년(영조 48)에 내린 사제문 5...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옥천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등. 옥천사(玉泉寺)는 대웅전 정면 좌우에 새로 만든 석등이 있다. 이 중 오른쪽에 있는 석등 옆 수풀에 옥천사 석등(玉泉寺石燈)이 쓰러진 채로 있었다. 옥천사 석등은 화사석(火舍石)이 사라졌는데, 남은 부재는 2020년 태풍 때문에 쓰러지면서 분리되었다....
-
1747년 광주향교(光州鄕校)의 향안이 파기된 사건. 전라도 광주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이후에도 오랫동안 기존의 사족들이 향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얼마 후 신향 세력의 도전으로 광주의 향촌 사회에도 커다란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고경명의 문집을 발행하기 위한 만든 목판. 제봉문집목판(霽峰文集木版)은 1617년(광해군 9)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의 막내아들인 고용후(高用厚)가 만들었으며 총 481장, 9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경명의 후손인 장흥고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 정기관에 소장되어 있...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우. 지산재는 본래 광주 지역 경주최씨 문중에서 세운 최치원(崔致遠)[857~?]을 배향한 지산사(芝山祠)의 강당이었다. 1868년[고종 5] 영당만 남고 모두 훼철되었으나 1922년 강당이 복설되고 지산재로 이름을 바꾸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광주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 조철영이 세운 비. 1843년(헌종 9) 광주목사 조철영(趙徹英)[1777~1853]이 집강(執綱) 권일제(權一濟)를 위하여 광주향교에 세운 비석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청주한씨 효자 2명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청주한씨쌍효비는 조선 후기 효자 한필오(韓弼五), 한필룡(韓弼龍)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2개의 비석이다. 한필오와 한필룡 형제는 본관이 청주(淸州)로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 1760년 부친상을 당하자 두 형제는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어머니가 노망(老妄)이 나자 두 형...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장흥고씨 재각. 추원각(追遠閣)은 장흥고씨 재각으로 고경명(高敬命)[1533~1592]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장흥고씨는 전라남도 장흥을 본관으로 하는데 전라남도 담양 일대 제봉 고경명 후손이 유명하여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이 일문을 창평고씨라 하며 호남 사족의 하나로 꼽고 있다. 고경명은 광주 압보촌(鴨保村) 출생으로 1558년 식년문과에 장원...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고경명 등을 배향한 사우. 포충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高從厚)[1554~1593], 고인후(高因厚)[1561~1592] 및 금산전투에서 같이 순절한 유팽로(柳彭老)[1554~1592], 안영(安瑛)[1564~1592]을 배향하고 있다. 광...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포충사의 편액. 조선시대 사액(賜額) 사우(祠宇)인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褒忠祠)의 편액(扁額)이다. 해서체로 끝에 ‘만력삼십일년유월일선사(萬曆三十一年六月日宣賜)’라는 기록이 있어 1603년(선조 36) 6월 사액 당시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명필가였던 석봉 한호(韓濩)[1543~1605] 노년기의 필체이다. 『포충사지(褒忠祠誌)』...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포충사의 중수 기록을 새긴 현판. 포충사중수기는 1879년(고종 16) 4월에 고경명의 8세손 고시원(高時源)이 지은 글을 현판에 새긴 것이다. 고시원은 1857년(철종 8) 포충사 중건을 주간하였는데 1879년에 60여 일에 걸쳐 중수할 때도 주간하였다. 중수기문에 이어 1960년 3월에 고시원의 증손 고윤주(高允柱)가 지은 추기문이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함풍이씨의 효열 정려각. 정호직(鄭浩直)의 처 함풍이씨(咸豊李氏)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하동정씨 문중에서 세웠다. 함평이씨는 어버이를 섬기는 데 노력을 다하였고 남편을 잘 위하여 죽은 뒤 조정으로부터 정려를 세우라는 특명이 있었다. 1830년 10월에 정민영(鄭旻濚)이 기록한 '제효열질부이씨정려병서(題孝烈侄婦李氏旌閭幷序)'에 나온다....
-
조선 후기 광주향교와 양사재의 전곡에 대한 경상 수입과 지출을 기록한 문서집. 『향교급양사재 전곡 응입응하 절목(鄕校及養士齋錢穀應入應下節目)』은 1886년(고종 23) 광주향교와 양사재의 전곡(錢穀)에 대한 응입(應入)·응하(應下) 절목 문서집이다. 응입은 규정에 따라 마땅히 들어와야 할 경상 수입, 응하는 마땅히 나가야 할 경상 지출이다. 원래 광주향교와 관련된 문서이지만 현재는...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광주향교에 소장된 조선 후기 강항의 광주향교 중수 상량문. 정유재란 때 소실된 광주향교를 1600년 중수할 때 강항(姜沆)[1567~1618]이 상량문을 지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장흥고씨 재실. 황산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송설정공(松雪亭公) 고중영(高仲英), 고경조(髙敬祖), 고성후(髙成厚) 등을 배향하고 있다. 고중영은 1540년[중종 35년] 사마시에 입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다가 모함으로 진도로 귀향갔으며, 고중영의 아들 고경조는 1552년 진사시에 입격하고 1561년 문과에 급제하여 경주목사에 이르렀다. 고성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