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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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太祖王建-莊和王后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1년 - 「태조왕건와 장화왕후」『광산군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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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태조왕건와 장화왕후」 『광주의 전설』에 「여희(汝希)재-태조왕건와 장화왕후의 애달픈 사랑」으로 수록 |
관련 지명 | 여희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
성격 | 설화|인물전설|지명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태조 왕건|장화왕후 오처자|견훤 |
모티프 유형 | 역사적 실존인물인 남녀의 이별과 재회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전해 내려오는 왕건과 장화왕후에 관한 전설.
[개설]
왕건(王建)[877~943]과 오처자(吳處子)가 샘에서 만나고, 오처자가 왕건의 아들을 낳은 후 재회하여 장화왕후가 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1년 전라남도 광산군이 간행한 『광산군지』에 수록되었다.
1990년 광주직할시가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되었다.
[내용]
고려 태조 왕건과 오처자가 처음 만난 곳은 나주(羅州) 흥룡동(興龍洞)[현재 나주읍 북문 밖]이다. 왕건은 견훤(甄萱)[867~936]의 본거지인 나주를 염탐하기 위해서 행인 복색으로 변장하고 흥룡동에 들어왔다. 왕건은 먼 길을 걸어온 탓에 몸도 피로하고 목이 말라서 오처자가 빨래하고 있는 샘터에 멈춰 물을 청하였다.
빨래를 하고 있던 오처자는 왕건의 요청에 당황하지 않았다. 오처자는 바가지로 샘의 물을 떠서 버들잎을 띄워 왕건에 건넸다. 왕건은 오처자에게 버들잎을 띄운 이유를 물었다. 오처자는 “물이라도 너무 급하게 마시면 체할 수 있다”고 하면서 천천히 마시라는 뜻으로 버들잎을 띄웠다고 말하였다. 왕건은 오처자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명을 받고, 호감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왕건과 오처자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왕건은 개경에 본처가 있었다. 왕건은 창업(創業)의 대망을 이루기 위해서 개경으로 갔다. 오처자는 왕건이 떠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처자는 얼마 후에 왕건의 아들이며, 고려조 2대 왕인 무(武)를 출산하였다. 왕건은 고려를 창업한 후에도 오처자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오처자는 계속 기다릴 수 없어서 아들을 데리고 왕건을 찾아서 개경으로 갔다. 이후 오처자는 장화왕후가 되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는 여희(汝希)재라는 고개가 있다. 여희는 너와의 재회를 바란다는 뜻이다. 왕건과 오처자가 첫 인연을 맺고 석별의 정을 나눈 고개가 여희재였다.
[모티프 분석]
「태조왕건와 장화왕후」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전해 내려오는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처자의 이야기이다. 오처자는 고려 왕조 2대 왕인 무(武)를 낳은 장화왕후로서 나주 출신이다. 오처자의 집안은 이후 나주에서 전라도 광주로 이주하였고, 오처자는 왕건과의 인연으로 낳은 아들을 데리고 태조 왕건을 찾아가 왕후의 자리에 올랐다. 태조 왕건과 오처자가 석별의 정을 나눈 장소가 여희재이어서 이야기는 지명전설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태조왕건와 장화왕후」는 나주 일대에서 폭넓게 전승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가 나주의 인근 지역이어서 이야기의 전승 권역에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