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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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博湖洞朴-濟州梁氏世居地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제주 양씨의 세거지.
[개설]
본디 박호동은 1914년 임곡면을 신설할 때 박뫼와 호산을 합쳐 만든 지명이다. 임곡면에 속하여 광주군에 소속되기 전에는 함평군 오산면이었으며, 1906년까지는 나주군에 속하여 있었다. 그러므로 임곡 광산에 살았던 고봉 기대승(奇大升)이나 박뫼마을 양응정(梁應鼎)[1519~1581]은 나주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송천 양응정의 묘도 옛날 나주에 속하였던 동호동에 있다. 그렇지만 양응정 후손들이나 양응정 자신이 주로 광주 사람들과 사귄 탓인지 광주 사람에 포함한다. 1792년에 지은 『광산지』 인물조에도 엄연히 송천 양응정의 이름이 올라 있다.
본디 '박뫼'라는 동네 이름도 죽산박씨들이 사는 동네의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양응정은 화순 능주에서 양팽손(梁彭孫)[1488~1545]의 8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나 박뫼에 살던 죽산박씨 박중윤의 딸에게 장가가 처가살이를 하면서 박뫼 사람이 되었다. 처갓집 죽산박씨의 후손들은 오늘날 임곡동 원임실에서 살고 있다.
[연원]
제주양씨는 모두 제주 삼성혈에서 나왔다는 양을라(良乙那)['良(양)'은 뒤에 '梁(양)'으로 바꾸어 칭하게 되었음]를 도 시조로 삼지만, 실제로 세계하는 파조를 본관으로 따져 보면 32본에 달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80개 본관의 양씨가 기록되어 있다. 가장 많은 양씨는 남원 본관으로 21만 명을 넘어서고 다음이 제주 본관으로 13만여 명이다. 그렇지만 광주광역시 시내에는 제주양씨가 1만 6000여 명, 남원양씨가 4,400여 명으로 제주양씨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광주광역시의 제주양씨는 화순을 중심으로 번진 양팽손의 집안 때문이다. 이 집안은 중시조를 고려 명종 때 사람 양보숭(梁保崇)을 1세로 하고, 양팽순을 11세로 세계한다. 남원양씨는 이미 조선 초엽 양성지[1415~1482]를 배출하여 1471(성종 1) 좌리공신 3등으로 남원군에 봉해져 집안을 빛내었다. 제주양씨는 1419년(세종 1)에 양봉래, 1453년(단종 1)에 양정명, 1464년(세조 10) 양진손, 1498년(연산군 4)에 양진손의 아들 양계벽이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별로 이름을 떨치지 못하였다.
이 급제자들은 『씨족원류(氏族源流)』를 보면 천안에 살았던 집안으로 정리하고 있다. 화순에 정착한 학포 양팽손 집안은 양팽손이 1516년(중종 11)에 장원한 데 이어 둘째아들 양응태(梁應台)가 1545년(인종 1)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셋째아들 양응정은 형에 앞서 1540년(중종 35)에 생원 장원을 거쳐 1556년(명종 11)에 중시에 또다시 장원하여 양씨 세 부자가 문명을 떨쳤다. 뿐만 아니라 양응정의 다섯 아들 중 셋째아들 양산숙(梁山璹)은 진주성싸움에서 순절하고, 둘째아들 양산용과 넷째아들 양산축, 그리고 딸, 며느리 등 온 가족이 정유재란 때 함평 대굴포에서 강을 건너다 참변을 당하여 일문팔절의 가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때 정문이 박뫼에 있다.
『조선의 취락』에는 1930년 이 동네 116집 가운데 102집이 제주양씨라고 기록하였다. 1990년에는 제주양씨가 40집 살고 있었으나, 2003년 광주민속박물관 조사 때는 42집 중 33집이 양씨들이었다.
[현황]
제주양씨들이 광주로 들어온 흔적은 1992년 남구 양과동 최씨들의 지산재 사우가 있는 동네에 덕충사라는 사우를 세운 곳에서 찾아진다. 그동안 제주양씨들은 집안 간의 세계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이를 계기로 양과동은 제주양씨들이 정착한 동네이고, 화순 양팽손 집안은 보숭 장군의 5세손 양석재의 아들 양한현의 6세라고 정리하고 있다. 1924년판 『광주읍지』는 광주의 인물로 양한충을 들고 있다. 양한충은 학포의 5대조 양한현의 형이다. 임진왜란 때 양가동에 살던 양재현[1556~1592]이 의병에 출전하였다. 광주 무등산록 충효동 건너 담양군 지실의 소쇄원 명승지는 양산보(梁山甫)의 별장이다. 양산보는 양팽손과 7촌 조카이며, 광산김씨 사위이고, 하서 김인후의 딸을 며느리로 삼은 집안이다. 1995년 박산에는 송천 양응정이 노닐었다는 임유정이라는 이름의 전각이 들어섰다. 박산 건너 동호동에 있는 송천 양응정의 묘소는 광주광역시 기념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