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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712
한자 漕運制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노성태

[정의]

고려·조선시대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거둔 조세를 강이나 바다를 이용해 수도로 운반하던 제도.

[내용]

역이 육상 교통기관으로서 그 기능을 수행한 데 반해 바닷길을 이용하여 지방에서 거둔 조세와 공물을 배를 이용하여 고려 수도 개경[개성]이나 조선 수도 한양으로 운반하는 것을 조운(漕運)이라 한다. 이러한 조운과 관련된 일을 담당한 기관이 조창(漕倉)이었으며, 조창은 고려 초기에 조세의 운송과 물자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도록 충청·전라·경상도 일대의 바닷가나 강가 연안의 12주현(州縣)에 설치되었다.

『고려사(高麗史)』 식화지 조운조에는 덕흥창[충주]을 비롯하여 12개의 조창이 기록되어 있다. 이 12개의 조창 가운데 전라도 광주 인근 지역, 즉 현재의 전라남도 지역에 설치된 조창은 나주의 해릉창(海陵倉), 영광의 부용창(芙蓉倉), 영암의 장흥창(長興倉), 승주의 해룡창(海龍倉) 등 4곳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조운은 고려 말 왜구의 잦은 침입과 약탈로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거의 폐지되다시피 하였다.

조선조에 들어와 바닷길을 이용한 조운의 편리성과 경제성 때문에 조운 제도가 다시 정비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전라도에는 나주 영산창, 영광 법성포창, 용안 덕성창 등 3개의 조창이 세워졌다. 전라도 광주 지역은 나주, 강진, 진도, 무안, 영암, 순천, 낙안, 광양, 화순 등과 함께 나주 영산창에 소속되었다.

전라도 광주 지역에도 광주의 조세를 거두어 보관하는 창고인 동창과 서창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 광산현 조에 따르면, 동창(東倉)은 북쪽으로 20리[약 8㎞] 지점인 천곡(泉谷)에 있었고, 서창(西倉)은 서남쪽으로 30리[약 12㎞] 지점인 방하동에 있었다. 동창과 서창에 모아진 조세곡은 조그마한 배를 통해 영산강 뱃길을 따라 나주 영산창까지 운반되었는데 영산창에서 한양으로 가는 뱃길이 험해 조운선이 침몰당하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이에 1512년(중종 7) 영산창은 법성창으로 이관되었다. 이에 따라 영산창에 소속되었던 광주의 조운도 법성창에 소속되게 되었다.

[관련 기록]

전라도 광주 지역의 조운제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고려사(高麗史)』권79, 「지」33 [식화2] 조운 서에, "국초에 남도의 수군(水郡)에 12창(倉)을 두었다. 충주(忠州)는 덕흥창(德興倉)이라 하고, 원주(原州)는 흥원창(興元倉), 아주(牙州)는 하양창(河陽倉), 부성(富城)은 영풍창(永豊倉), 보안(保安)은 안흥창(安興倉), 임피(臨陂)는 진성창(鎭城倉), 나주(羅州)는 해릉창(海陵倉), 영광(靈光)은 부용창(芙蓉倉), 영암(靈岩)은 장흥창(長興倉), 승주(昇州)는 해룡창(海龍倉), 사주(泗州)는 통양창(通陽倉), 합포(合浦)는 석두창(石頭倉)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 나주목, "영산창(榮山倉)은 금강진(錦江津)가에 있는데 채산현(菜山縣)의 옛터이다. 국초에 조창을 두고 창성(倉城)을 쌓아 나주·광주·순천·강진·진도·낙안·광양·화순·남평·동복·흥양·무안·능주·영암·보성·장흥·해남 등의 전세(田稅)를 이곳에서 한양으로 운송하였다. 중종 7년에 조창을 영광의 법성포(法聖浦)로 옮겼는데, 지금의 강창(江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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