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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공원 나무아미타불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489
한자 松汀公園南無阿彌陀佛塔
영어공식명칭 Namo Amitabha Buddha Pagoda of Songjeong Par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공원로 8-13[소촌동 산 4-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염승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공원로 8-13[소촌동 산 4-1]지도보기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운 탑의 비.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광주송정도서관 앞 현충탑 우측에 있다.

[건립 경위]

일제강점기,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공원 게이트볼장 자리에 있었던 신명신사(神明神祠)가 폐지되고 송정신사(松汀神社)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송정동초등학교를 다녔던 조병현의 인터뷰에 따르면 1941년 송정공원 안에 나무아미타불탑(南無阿彌陀佛塔)이 있었다고 한다.

[형태]

1단의 석조단 위에 2단의 두꺼운 각형(角形) 받침이 있으며, 그 위에 사각형의 긴 탑비가 있다. 정면에는 6개의 방형의 구획 안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었다. 이 탑은 양식과 소재를 살펴봤을 때 광주 성거사지(聖居寺址)에 있던 광주신사(光州神社) 충혼탑과 유사하다. 광주신사 충혼탑은 1909년 9월부터 10월까지 2달에 걸쳐 진행된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 때 죽은 일본군을 기리는 탑이다. 광주신사 충혼탑은 해방 후 파괴되었다.

[금석문]

전면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는 6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원래는 광주신사 충혼탑처럼 전면에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라는 글자가 새겨졌으나, 1951년에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글자를 다시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좌측면에는 '단기 4284년[서기 1951년] 10월 3일'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탑의 배면에는 무언가를 지운 흔적이 있다.

[현황]

송정공원 나무아미타불탑 우측으로 3개의 비가 있다. 차례대로 의혼비(義魂碑), 의병대장 금재 이기손 장군 의적비(義兵大將錦齋李起巽將軍義跡碑), 이기손 의병장의 행적 기록비가 있다. 의혼비는 1951년 광산군민의 이름으로 세운 비이다. 의병대장 금재 이기손 장군 의적비는 1975년에 지어졌다. 송정공원 나무아미타불탑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송정공원 나무아미타불탑은 일제의 잔재를 살펴볼 수 있는 광주광역시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탑비이다. 이 탑비는 광주신사 충혼탑과 달리 탑비에 새겨진 글자와 명칭이 바뀌면서 원래 의미가 퇴색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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