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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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山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사동길 93[서창동38-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효주 |
건립 시기/일시 | 1895년 - 봉산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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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2019년 - 봉산재 중건 |
현 소재지 | 봉산재 - 광주광역시 서구 사동길 93[서창동38-1] |
성격 | 재실 |
양식 | 한식기와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충주박씨 문중 |
관리자 | 충주박씨 문중 |
[정의]
[개설]
봉산재는 눌재(訥齋) 박상(朴祥)[1473-1530]의 재실이다. 박상은 1473년 현재의 광주광역시 서구 방하동에서 태어나 1501년부터 1529년까지 관직에 재직하였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시비복위상소를 올린 일로 남평에 유배되었으며, 『눌재집(訥齋集)』과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을 남겼다. 봉산재 뒷산의 이름이 봉황산이어서 박상을 봉산거사라 하였으며, 재각의 이름도 여기서 따와 봉산재라 하였다.
[위치]
광주광역시 서구 사동길 93[서창동 38-1]에 있다.
[변천]
봉산재는 원래 1895년에 세워졌다고 하나 1919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2019년 중건되었다.
[형태]
봉산재의 본체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한식기와 팔작지붕 목조 건물이다. 재실 입구에 완절문(完節門)이라는 편액이 있는 솟을대문이 있다. 재실에는 기문이나 재각기는 없고 상량문에 "을미구월초육일(乙未九月初六日)"이라 쓰여 있다. 재실 앞마당에는 귤정(橘亭) 윤구(尹衢)가 쓴 행장비가 세워져 있다.
[현황]
봉산재는 2019년에 중건되어 건물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재실 안에는 박상의 영정과 봉산재 중건기, 봉산재 중건상량문이 있다. 재일은 매년 음력 10월 16일이다.
[의의와 평가]
봉산재는 박상을 기리는 재실로서 의의가 있으며, 박상 사후 350여 년이 지난 뒤 지어졌기 때문에 조선 말기의 재실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