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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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山程氏 |
영어공식명칭 | Hansan Jeong Clan |
이칭/별칭 | 금산정씨,부리정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호 |
본관 | 한산 - 광주광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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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세장지 | 한산정씨 제각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
성씨 시조 | 정사조(程思祖) |
[정의]
정사조를 시조로 하는 광주광역시의 세거 성씨.
[연원]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무진군(茂珍郡) 토성 항목에 13성이 실려 있고, 촌(村)성으로 유(庾)씨를 적은 뒤 속성(續姓)이라 하여 개성김씨(開城金氏), 금산정씨(錦山程氏), 고흥신씨(高興申氏), 강진최씨(康津崔氏)의 4성을 덧붙이고 있다. 이 4성은 모두 향리(鄕吏)로 못 박았던 탓인지, 권문해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쓰면서 광주정씨(光州程氏)는 본디 아전의 성이었다고 쓰고 있다. 이처럼 하남정씨들은 금산정씨, 광주정씨 등의 별칭이 있는 중국 귀화 성씨이다.
하남정씨 족보를 보면 한반도에 귀화해 정착한 사람은 정사조(程思祖)[1309~1383]로 1351년 공민왕의 왕비가 된 원나라 노국공주[?-1364]를 배송한 중국 사람이다. 하남정씨 집안에서는 정사조를 주자학(朱子學)의 기초를 닦은 송나라 정이(程頤)[1033-1107]의 6세손이라고 주장하고, 고려 때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瑞川)인 한산(韓山) 고을에 정착하면서 고려 조정에서 한산군봉을 받아 본관을 한산으로 했다고 한다. 기록에 따라 정씨들의 본터 자리는 금산군(錦山郡) 부리(富利)였으므로 부리정씨 또는 금산정씨라 한다고 되어 있다.
정사조의 아들 정광(程廣)이 광주 토성 광산이씨 사위로 광주에 정착하였고, 정광의 아들 정유련(程有連)[1365-?]이 광주김씨 김태현의 사위가 되었으며, 정급(程岌)[1396-?]은 광산노씨 노준공의 사위가 되었다고 정리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당시 광주 토반들과는 고루 인척관계를 맺는 향리였으나 문과 급제자를 내지 못해 한미해진 듯하다. 고려 말엽 정착해 새 왕조가 들어서는 것을 못마땅해한 금성범(范)씨와 같은 경우도 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사람들은 중국 하남을 본관으로 하고, 한산은 파(派)로 본다.
[현황]
2000년 연구통계 때 정씨(程氏) 인구는 1만 220가구로 총 3만 2519명이었다. 현존 국내 정씨는 13본(本)으로 한산 본관은 1,153명이고 광주 본관도 1,023명으로 같은 집안이 합하지 못했다고 볼 경우 2,176명이 된다. 국내에서 동래(東來) 본관(本貫)이 가장 많아 1만 632명이며 중국 귀화 성씨임을 나타내는 하남 본관도 7,766명이다. 한산 본관 정씨는 747명인데 비해 하남정씨는 1,272명이다.
[관련 유적]
정랑동(程郞洞)이라 불렀다는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한산정씨 제각이 있으며, 그 곁에 정광의 신도비[1916년 건립]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