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05 |
---|---|
한자 | 開城金氏 |
영어공식명칭 | Gaeseong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김준을 시조로 하는 광주광역시의 세거 성씨.
[연원]
개성김씨(開城金氏)는 조선 초엽 광주의 향리를 맡기 위해 전입된 속성(續姓) 4성 중의 한 성씨이다. 조선 개국 후 지방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그 지방 통치를 위한 향리들의 부분적인 이동이 필요했던 듯 싶다.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을 통일한 뒤 친위세력을 포상하고, 각 고을을 분정하고 본관 성씨를 부여한 뒤 고착된 지방세력의 개편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 무신정권 이후 신흥 토반세력이 자리를 굳힌 광주에 고려 왕도에서 성장한 개성김씨와 원나라 공주를 수종한 한산정씨를 전속시킨 배경이라 할 수 있다. 탐진최씨도 고려 무신정권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탐진의 첫째 성단으로 성장했으나 광주 향리로 옮겨진 뒤 쇠락하였다. 오직 고령신씨(高靈申氏)만이 중앙 진출에 역량을 보여 조선 초기 유력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던 것과는 달리, 조선 초기 이입된 개성김씨, 한산정씨, 탐진최씨는 조선조에 한미한 집안이 되고 말았다.
『증보문헌비고』를 보면 개성김씨는 예종대[1105~1122] 평장사를 지낸 김준(金晙)이 시조라고 적고 있다. 영남대학교 이수건 교수는 『한국 중세사회사 연구』에서 개성김씨는 왕건의 집안이거나 고려 개국에 참여한 토호집안 중 한 집안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문헌비고』에 개성김씨 시조로 내세우는 김준이 살던 시대에 이미 왕충(王忠)이란 인물의 외가가 개성 향리를 지내던 김대경이었던 점이나, 『세종실록지리지』에 보이는 개성 토성 5성 중 두 번째가 김씨였으나 이곳 토성들이 뿔뿔이 흩어졌던 사정을 들었다.
[현황]
오늘날 개성김씨는 6,434가구에 총 20,341명이다. 휴전선 이북에 개성김씨가 많았던 점 등으로 미루어 큰 문중은 아니다. 조선시대 문과급제자도 13명에 불과하다. 광주광역시에 49가구 171명이 살고 있다. 이 가계보를 보면 충청남도 대덕의 신탄진에 살던 김하권이 광산김씨 집에 장가들어 광주와 인연을 맺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