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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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鵬 |
영어공식명칭 | Park Bung |
이칭/별칭 | 백금(伯禽),도남(圖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창우 |
[정의]
조선 전기에 예문관대교, 한림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박붕(朴鵬)의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백금(伯禽), 도남(圖南)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 박자회(朴子回), 어머니는 이씨(李氏)이고, 부인은 전씨(全氏)이다. 형은 사예(司藝)를 역임한 박곤(朴鯤)이다.
[활동 사항]
박붕은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 의하면 1504년(연산군 10)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에 6위로 급제하였으며 아버지는 박자회로 되어 있다. 「사마방목(司馬榜目)」에는 그 이전인 1495년(연산군 1) 증광시(增廣試) 생원 3등에 50위로, 진사 3등에 15위로 입격한 전력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때는 백금(伯禽)이라는 호를 썼다. 그러나 과거 급제 이후 박붕의 내력은 자세하지 않다. 성균관전적, 홍문관대교, 예문관봉교, 한림제학 겸 춘추관기주관 등을 지냈다고 하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 여타 자료에도 박붕의 행적이 거의 없어 확실하지 않다. 다만, 『광주읍지(光州邑誌)』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와 한림(翰林)을 역임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박붕의 생몰 연대는 자세하지 않다. 먼 훗날의 일이지만, 박붕의 후손인 박성우(朴性愚)[1818~?]라는 인물이 광주에서 세거했다는 설명을 고려할 때, 박붕 일가 역시 광주 지역과 관련이 있다고 짐작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