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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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仁寬 |
영어공식명칭 | Jeong In-kwan |
이칭/별칭 | 백유(伯裕),옥천(玉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창우 |
[정의]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승지, 전적, 장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정인관(鄭仁寬)의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할아버지는 정응종(鄭應種), 아버지는 정표(鄭彪), 아들은 정설(鄭渫)이다.
[활동 사항]
정인관은 1543년(중종 38) 진사에 입격하였고 9년 뒤인 1552년(명종 7)에 식년시(式年試) 병과 11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는 정인관의 활동 내역이 잘 확인되지 않는다. 1566년(명종 21)에 조정에서 이황을 능성현령(綾城縣令)으로 임명할 때, 정인관이 후보로 의망(擬望)[이조와 병조에서 후보자를 추천하는 일]되었다는 것과 1575년(선조 8)에 정인관을 전적(典籍)으로 삼은 일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확인되는 기록의 전부이다. 한편, 『고봉집(高峯集)』 별집에는 정인관이 남긴 기대승의 제문(祭文)이 보이는데, 여기에 “임신년[1572년(선조 5)] 12월 28일 장흥부사(長興府使) 정인관”이라는 구절이 있어서, 선조 대 어느 시점에 정인관이 장흥부사에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광주읍지(光州邑誌)』에는 “강항의 문집에 이르기를 ‘정인관의 문하에 남방 선비들의 종유(從遊)한 자가 천백의 숫자다.’라고 하였다.”는 내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