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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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涵一 |
영어공식명칭 | Lee Hamil |
이칭/별칭 | 일오(一吾),일사(一査)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홍창우 |
출생 시기/일시 | 1562년 - 이함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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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89년 - 이함일 진사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603년 - 이함일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06년 - 이함일 성균관학정 겸 중학훈도(成均館學正兼中學訓導)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07년 - 이함일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14년 - 이함일 형조정랑(刑曹正郞)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16년 - 이함일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18년 - 이함일 강진현감(康津縣監)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621년 - 이함일 사망 |
출생지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함평(咸平) |
대표 관직 | 사헌부감찰|형조정랑|강진현감 |
[정의]
조선 전·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사헌부감찰, 형조정랑, 강진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이함일(李涵一)[1562~1621]의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일오(一吾), 호는 일사(一査)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윤무(李允武), 할아버지는 이경수(李鯨壽), 아버지는 이방필(李邦弼), 어머니는 김유인(金有仁)의 딸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첫째 부인은 진익신(陳翼臣)의 딸 여양진씨(驪陽陳氏)이고, 둘째 부인은 홍식(洪植)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활동 사항]
이함일은 1562년(명종 17)에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서 태어났으며, 1589년(선조 22)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1603년(선조 36) 식년시에서 병과 1위[전체 11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피란하지 않고 성균관을 지켰으며,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부모가 모두 사망하여 3년상을 치렀다. 이함일은 이 시기에 별다른 관직을 맡지 않았다. 과거에 통과해서 성균관학정 겸 중학훈도(成均館學正兼中學訓導)를 시작으로 종주시주부(宗簿寺主簿),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병조정랑(兵曹正郎),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강진현감(康津縣監), 영해부사(寧海府使) 등 내·외직을 가리지 않고 역임하였다. 선조가 죽고 나서는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기주관(記注官)으로 참여하였다.
이함일은 1614년(광해군 6) 형조정랑(刑曹正郞)에 임명되었고, 임금으로부터 포상을 받는 등 계속해서 이름을 알렸다. 1615년(광해군 7)에는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성균관사성으로 재직 중이던 1618년(광해군 10)에 이른바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 사건’이 발생하자, 이함일은 이에 반발하여 조정 회의에 불참하였다. 이 일로 인해 이함일은 강진현감(康津縣監)으로 좌천되었고, 임기를 마친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다 1621년(광해군 13)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일사집(一査集)』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후손인 이순범(李淳範)이 펴낸 이함일의 문집이다. 전체 3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송병화(宋炳華)의 서문, 기우만(奇宇萬)과 8세손인 이장헌(李璋憲)의 발문이 확인된다. 시(詩)와 부(賦), 소(疏), 논(論) 등의 다양한 글과 연보 및 행장, 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