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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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致光 |
영어공식명칭 | Kim Chikwang |
이칭/별칭 | 국빈(國賓),충효당(忠孝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창우 |
출생 시기/일시 | 1732년 - 김치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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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63년 - 김치광 생원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777년 - 김치광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86년 - 김치광 예조정랑(禮曹正郞) 임명 |
출생지 | 충효마을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광산(光山) |
대표 관직 | 예조정랑(禮曹正郞)|평안도사(平安都事)|은율현감(殷栗縣監) |
[정의]
조선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예조정랑, 평안도사, 은율현감 등을 지낸 문신.
[가계]
김치광(金致光)[1732~?]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국빈(國賓), 호는 충효당(忠孝堂)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인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의 먼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수신(金守信), 할아버지는 김영복(金榮復), 아버지는 김도명(金道鳴)이다.
[활동 사항]
김치광은 의병장 김덕령의 방손(傍孫)으로 1732년(영조 8) 광주의 충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태어났다. 김치광은 1763년(영조 39) 생원에 입격하였고, 1777년(정조 1)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에 펼쳐진 증광시에서 병과 23위[전체 33위]를 차지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기록상으로 김치광의 행적이 잘 확인되지 않는다.
1786년(정조 10)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제수되었다는 기록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보이며, 『정조실록(正祖實錄)』에 의하면 같은 해에 정조가 “평안도사 김치광은 익호장군(翼虎將軍)[김덕령을 지칭함.]의 후손이니, 내직에 빈자리가 나면 의망(擬望)[후보자를 추천하는 일]하여 조정에서 거두어 등용하는 뜻을 보이도록 하라.”라는 하교를 내렸다고 한다. 여기서 김치광을 ‘평안도사(平安都事)’라 하고 있고 또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는 ‘은율현감(殷栗縣監)’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김치광은 여러 외직을 맡았던 것 같다. 『광주읍지(光州邑誌)』나 『호남인물지(湖南人物志)』에는 김치광이 서쪽 지역의 수령으로 재임할 때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하였다는 등 치적이 뚜렷하였으나 고과(考課)가 부진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는데, 왕이 특별하게 명을 내려 도백(道伯)[관찰사의 별칭]을 추고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