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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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運鴻 |
영어공식명칭 | Yi Unhong |
이칭/별칭 | 중지(重之),대거(大擧),쇄소당(灑掃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바른 |
[정의]
조선시대 전라도 광주 지역에 거주한 문인.
[가계]
이운홍(李運鴻)[?~1597]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지(重之)·대거(大擧), 호는 쇄소당(灑掃堂)이다. 대사성(大司成) 이초(李椒)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현령(縣令) 이세무(李世武), 아버지는 이의중(李義重)이다. 아들은 이발(李渤), 손자는 이지원(李之遠), 이지매(李之邁)이다.
[활동 사항]
이운홍은 전라도 광주 사람으로,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부모를 성심을 다해 섬겼다. 임진왜란 때 기대승의 아들 기효증(奇孝曾)과 이굉중(李宏中) 등과 함께 의곡(義穀)과 의병을 모아 행재소(行在所)[임금이 멀리 거둥할 때 임시로 머무르는 별궁]에 나가 명나라 군대의 군량을 대었다. 정유재란 때 아버지 이의중을 등에 업고 피난하다 왜적에게 피살되었다. 『광주읍지(光州邑誌)』 누정조에 주(州)의 서쪽 16㎞[40리]에 이운홍의 별서(別墅) 쇄소당(灑掃堂)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손자 이지원이 중수하여, 쇄소당에서 거문고를 타고 독서를 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이운홍의 작품은 전하지 않으나, 『고봉집(高峯集)』에 기대승이 이운홍의 시를 차운(次韻)해 지은 시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