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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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鼎實 |
영어공식명칭 | Yi Jeongsi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바른 |
[정의]
조선시대 전라도 광주 지역에 거주한 문인.
[가계]
이정실(李鼎實)[?~?]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이몽득(李夢得), 아버지는 청단도찰방(靑丹道察訪) 이계선(李繼先)이다. 동생은 이정진(李鼎珍), 이정화(李鼎和), 이정신(李鼎新)이다.
[활동 사항]
이정실은 전라도 광주 사람이다. 천성이 효성스러워 아버지가 병이 들자 변을 맛보는 지극한 효도로 돌보았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상(喪)을 마칠 때까지 여묘살이하였다. 인종(仁宗)[재위 1544~1545] 때 조정에서 효도로 천거(薦擧)하여 주부(主簿)[조선시대 관서의 문서와 부적을 주관하던 종6품 관직]를 제수(除授)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연로하여 의거(義擧)하지 못하다가, 동생의 권유로 청사(晴沙) 고용후(高用厚)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상훈과 추모]
이정실은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에 있었던 대치사(大峙祠)에 배향되었다. 대치사는 1719년에 창건되어 이석지(李釋之), 이안직(李安直), 이종검(李宗儉) 등의 위패를 모셨다. 1741년(영조 17) 사설(私設) 향사우(鄕祠宇)의 금령(禁令)에 따라 훼철(毁撤)되었다가 1766년 복원되어 이정실 외 이보흠(李甫欽), 이종겸(李宗謙), 이정신(李鼎新), 이정태(李鼎泰) 등이 추가 배향되었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다시 훼철되었다. 1920년 이석지의 후손에 의해 옛터에 유허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