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01 |
---|---|
한자 | 鄭大休 |
영어공식명칭 | Jeong Daehyu |
이칭/별칭 | 경명(經明),회헌(悔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몰년 시기/일시 | 1592년 - 정대휴 사망 |
---|---|
묘소|단소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산12~산17번지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광주(光州) |
대표 관직 |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신.
[가계]
정대휴(鄭大休)[?~1592]의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경명(經明), 호는 회헌(悔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윤적(鄭允績), 할아버지는 정만종(鄭萬鍾)이다. 아버지는 정함(鄭涵)이다. 부인은 부사(府使) 이곡기(李鵠基)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활동 사항]
정대휴는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으로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절하였다. 정대휴는 1590년 6월에 김성원(金成遠)[1525~1597] 외 여러 유생들과 식영정(息影亭)에 모여 시문을 지으며 즐겼다. 김성원의 문집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 ‘탁열도제현목록(濯熱圖諸賢目錄)’에 이때 모였던 인물들의 호·이름·자·본관 정보가 정리되어 있다. 정대휴는 김성원 외에도 김복억(金福億)‚ 이부륜(金富倫)‚ 최경회(崔慶會)‚ 오운(吳澐)‚ 양자징(梁子渟)‚ 정암수(丁巖壽)‚ 김사노(金師魯)‚ 김영휘(金永暉)‚ 임회(林檜) 등 당대 광주 지역의 다양한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묘소]
정대휴의 묘소는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산12~산17번지에 있다. 부인 성주이씨와 쌍묘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