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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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彦信 |
영어공식명칭 | Park Eonshin |
이칭/별칭 | 호중(好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활동 시기/일시 | 1582년 - 박언신 무과 급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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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92년 - 박언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05년 - 박언신 선무원종공신에 녹훈 |
묘소|단소 | 강동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일대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밀성(密城) |
대표 관직 | 선무랑(宣武郞)|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무신.
[가계]
박언신(朴彦信)[?~1592]의 본관은 밀성(密城), 자는 호중(好仲)이다. 충정공(忠靖公) 박세균(朴世均)의 후손이고 난계(蘭溪) 박연(朴堧)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감(縣監) 박맹우(朴孟愚)이며, 할아버지는 박곤이다. 아버지는 박금흥이며, 부인은 김석규(金錫圭)의 딸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활동 사항]
박언신은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였다. 성품이 정의로우며 평생 충과 효로 절의(節義)를 지켰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뜻을 세워 의병을 일으켰으며,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관직은 선무랑(宣武郞),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역임하였다.
[묘소]
박언신의 묘소는 전라도 광주 소지면(所旨面) 강동[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일대]에 있다고 전하는데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다.
[상훈과 추모]
1605년(선조 38)에 임진왜란 때 세운 공을 인정받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