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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043
한자 金顯承
영어공식명칭 Kim Hyeonseung
이칭/별칭 남풍,다형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박찬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3년연표보기 - 김현승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4년 - 김현승 『동아일보』를 통해 등단
활동 시기/일시 1936년 - 김현승 숭일학교 교사로 재직중 신사참배 문제로 구금 및 파면
활동 시기/일시 1950년 - 김현승 『신문학』 창간 및 편집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김현승 제1회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65년 - 김현승 제1회 시인협회상 수상 거부,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0~1973년 - 김현승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3년 - 김현승 서울특별시문화상 예술 부문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75년연표보기 - 김현승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무등산 원효사 계곡 도로변에 '다형 김현승 시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84년 - 숭실대학교 교정에 '다형 김현승 시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2007년 - 호남신학대학교 교정에 '다형 김현승 선생 시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2009년 - 다형김현승시인기념사업회 발족
추모 시기/일시 2013년 - 광주광역시 '김현승 문학상' 제정
추모 시기/일시 2015년 - 숭실대학교 '김현승 시문학상' 제정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
거주|이주지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지도보기
묘소 모란공원묘지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경춘로2110번길 8-102[월산리 606-1]
성격 문학가
성별
대표 경력 숭전대학교 교수|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정의]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개설]

김현승(金顯承)[1913~1975]은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남풍(南風), 다형(茶兄)이다. 아버지 김창국(金昶國) 목사가 광주 금정교회[지금의 광주제일교회]로 부임한 후 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광주 숭일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였고, 이후 숭실전문학교[지금의 숭실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숭일학교 교감과 조선대학교 문리학부 문학과 교수, 숭전대학교[지금의 숭실대학교] 교수와 문리과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며 다수의 시인들을 등단시키고, 『김현승 시초(詩抄)』 등을 발간하였다.

[활동 사항]

1934년 숭실전문학교 2학년 무렵, 숭실전문학교 교수이자 시인이었던 양주동(梁柱東)의 추천으로 『동아일보』 3월 25일자에 「쓸쓸한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과 3월 27일자에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동아일보』 5월 17일자에 「아침과 황혼을 데리고 갈 수 있다면」을 발표하는 등 1936년까지 3년 동안 18여 편의 작품을 신문과 『조선시단』에 발표하며 활발한 시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36년 광주 숭일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신사참배 문제로 인해 구금되었다가 학교에서 파면당하였다. 이후 평안북도 용강군의 사립학교와 황해도 봉산군의 홍수원 금융조합, 전라남도 화순군 금융조합을 전전하면서 일제 말기에는 시작(詩作)에 전념하지 못하였다.

김현승은 1949년 7월 『민성』에 「내일」을 발표하며 다시 창작 활동을 개시하였다. 이후 6.25전쟁의 와중에는 광주문화사를 운영하던 백완기박용철의 유족인 임정희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순문예지 『신문학』의 편집을 맡았다. 『신문학』은 제4호까지 발행되었으며, 김현승은 「신록이 필 때」, 「고향에」, 「내가 나의 모국어로 시를 쓰면」, 「어제」 등의 시편을 발표하였다. 『신문학』 외에도 1951년 『전우』와 『갈매기』, 1952년 『시정신』, 1953년 『시와 산문』 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의 시단(詩壇)의 기틀을 다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주명영, 이성부, 문병란, 손광은, 오규원, 진헌성, 문순태 등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 출신 32명을 추천으로 등단시킴으로써 지역 시단뿐만 아니라 중앙 시단에 역동적인 활력을 주었다.

김현승은 1957년 그간에 발표한 시들을 모아 첫 시집 『김현승 시초』[문예사상사]를 출간하였으며, 이후 세 권의 시집과 1974년 『김현승 시전집』[관동출판사]을 출간하였다. 문단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였는데, 1955년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 1965년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1970~1973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김현승은 1975년 4월 숭전대학교에서 채플 강의 도중 쓰러져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현승은 1957년 제1시집 『김현승 시초』, 1963년 제2시집 『옹호자의 노래』[선명문화사], 1968년 제3시집 『견고한 고독』[관동출판사], 1970년 제4시집 『절대 고독』[성문각]을 출간하였다. 1974년 『김현승 시전집』이 있으며, 김현승의 사후 1975년에 발간된 『마지막 지상에서』[창작과비평사], 1984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예전사], 1986년 『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열음사] 등이 있다. 이 밖에 1975년 『한국 현대시 해설』[관동출판사]과 1977년 산문집 『고독과 시』가 있으며, 김현승의 시와 산문 등을 3권으로 집대성한 『김현승 전집』[시인사]이 1985년에 출간되었다.

[묘소]

김현승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현승은 1955년 제1회 전라남도 문화상, 1973년 서울특별시문화상 예술 부문 등을 수상하였다. 한국시인협회의 제1회 시인협회상의 수상자로 결정되었지만 수상을 거부하였다. 1977년 시비건립추진위원회에 의하여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산 원효사 계곡 도로변에 김현승의 「눈물」이 새겨진 '다형 김현승 시비'가 세워졌으며, 2007년에는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호남신학대학교 교정에 「가을의 기도」가 새겨진 '다형 김현승 선생 시비'가 시비건립추진위원회에 의해 세워졌다. 또한 숭실대학교 교정에 「가을의 기도」가 새겨진 '다형 김현승 시비'가 1984년에 건립되었고, 중앙도서관 1층에 시인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중앙도서관 4층에는 김현승이 보던 책을 비치한 '다형문고'가 있다.

숭실대학교는 2015년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김현승 시문학상'을 제정하였으며, 광주광역시는 2013년부터 '김현승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김현승의 문학 업적과 시정신을 기리기 위해 '다형김현승시인기념사업회'가 2009년 발족하여 '다형김현승전국학생문예공모'와 '다형문학잔치' 등 다양한 문학 행사를 기획하여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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