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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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泰一 |
영어공식명칭 | Jo Taeil |
이칭/별칭 | 죽형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찬모 |
출생 시기/일시 | 1941년 - 조태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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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66년 - 조태일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64년 - 조태일 『경향신문』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시 당선 |
활동 시기/일시 | 1969~1970년 - 조태일 월간 『시인』 주간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71년 4월 - 조태일 '민주수호선언' 동참,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74년 11월 - 조태일 '문학인 101인 선언' 서명,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91년 - 조태일 제1회 편운(片雲)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2년 - 조태일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3년 - 조태일 성옥문화상 예술 부문 대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5년 - 조태일 제10회 만해문학상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1999년 - 조태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9년 - 조태일 보관문화훈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2003년 - 조태일 시문학 기념관 개관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 설립 |
추모 시기/일시 | 2019년 - 조태일문학상 제정 |
출생지 |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
학교|수학지 | 광주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동구 중앙로 302[계림동 239-1] |
학교|수학지 | 경희대학교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회기동 1-5] |
학교|수학지 | 경희대학교 대학원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회기동 1-5]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문학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자유실천문인협의회 상임운영위원|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한 시인.
[개설]
조태일(趙泰一)[1941~1999]은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죽형(竹兄)이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시작(詩作) 활동과 문단 활동을 전개하며 『국토』 등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활동 사항]
조태일은 광주서중학교와 광주고등학교를 거쳐 1966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1984년 석사 학위와 1991년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9년부터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봉직하였다.
1964년 대학 2학년 재학 중 『경향신문』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시 「아침 선박(船舶)」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65년 첫 시집 『아침선박』을 출간하였다. 신춘문예 등단자들의 모임인 '신춘시'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창작과비평』, 『월간문학』, 『신춘시』 등에 「눈깔사탕」, 「식칼론」 「대창」 「요강」 「만난다」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1969~1970년에는 월간 시지(詩誌) 『시인』의 주간을 지냈으며, 김지하·양성우·김준태·박남준 시인 등을 발굴하였다. 1970년 시집 『식칼론』을 출간하였다.
1971년 4월 남정현, 구중서, 김지하, 이호철, 최인훈, 박태순 등 문학계 인사를 비롯하여 학계, 언론계, 법조계, 종교계 등의 인사 46명과 '민주수호선언'에 동참하고, 1971년 4월 19일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1974년 11월에는 문인들의 반유신 운동인 '문학인 101인 선언'에 서명하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1975년 『국토』를 출간하였으며, 이 시집이 '금주의 베스트셀러'에 오르지만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판매 금지 조치를 받았다.
1977년 양성우 시인의 『겨울공화국』 발간에 연루되어 시인 고은과 함께 투옥되기도 하였다. 또한 1981년에는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국제펜클럽 한국지부 임시총회에서 발표하기로 결의하였다는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하였다. 1983년 『가거도』를 발행하지만 판매 금지가 되었다.
1980년에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기획한 무크지 『실천문학』 창간호에 양성우, 신경림, 문병란 등과 함께 시를 발표하고, 1992년에는 진보적 문예 이론을 표방하는 무크지 『민중문예』에 도종환 등과 함께 시를 발표하였다. 『가거도』 출간 이후 1999년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를 비롯하여 네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조태일은 198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상임운영위원,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와 저작권보호위원회 위원장, 저작권보호위원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광주대학교 예술대학장을 지냈다. 1999년 간암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조태일은 8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1965년 제1시집 『아침 선박』[선명문화사], 1970년 제2시집 『식칼론』[시인사], 1975년 제3시집 『국토』[창작과비평사], 1983년 제4시집 『가거도』[창작과비평사], 1987년 제5시집 『자유가 시인더러』[창작사], 1991년 제6시집 『산 속에서 꽃 속에서』[창작과비평사], 1995년 제7시집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창작과비평사], 1999년 제8시집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창작과비평사]가 있다.
조태일의 산문과 시론을 모은 문학선(文學選)인 『연가』[나남]가 1985년에 출간되었으며, 1994년 『시창작을 위한 시론』[나남출판], 1998년 『김현승 시 정신 연구』[태학사] 등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전 4권으로 구성된 『조태일 전집』[창작과비평사]이 2009년에 출간되었다.
[묘소]
경기도 용인시 용인공원 묘원에 있다가, 2005년 국립5.18민주묘지로 옮겨졌다. 조태일은 살아 생전 끝끝내 5.18민주유공자 신청을 거부하였지만, 막역지우인 박석무 5.18기념재단 이사장과 후배 김준태 시인 등이 노력한 결과이다.
[상훈과 추모]
조태일은 1991년 제1회 편운(片雲)문학상, 1992년 전라남도 문화상, 1993년 성옥문화상 예술 부문 대상, 1995년 제10회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조태일의 사후 1999년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2003년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에 조태일의 문학 세계를 기리고 예비 문학인들의 창작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태일 시문학 기념관'이 개관하였다. 2015년 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으며, 2019년 조태일의 삶과 시 세계를 기리는 '조태일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또한 조태일 헌정 문집으로 2020년 『살아 있는 숨결』[문학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