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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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順喜 |
영어공식명칭 | Yang Sunhu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남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 양순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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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양순희 광주 3.10만세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0일 - 양순희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8월 11일 - 양순희 출옥 |
추모 시기/일시 | 2016년 - 양순희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중흥리 |
거주|이주지 |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서문통 |
학교|수학지 | 수피아여학교 - 전라남도 광주군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수피아여학교 학생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개설]
양순희(梁順喜)[1901~?]는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중흥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전개된 3.10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전라남도 광주에서는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다가 만세 시위 현장을 목격한 김철(金鐵)과 서울 유학생인 최정두(崔正斗)가 1919년 3월 5일 광주에 돌아와 남궁혁(南宮赫)의 집에서 김강(金剛), 최병준(崔炳俊), 최한영(崔漢泳), 황상호(黃尙鎬), 강석봉(姜錫奉), 한길상(韓吉祥), 최영균(崔瑛均), 김용규(金容奎), 서정희(徐廷禧) , 김태열(金泰烈), 홍승애(洪承愛), 손인식(孫仁植), 송흥진(宋興眞) 등과 만나 서울의 독립 만세 시위의 정황을 전하고, 전라남도 광주에서도 큰장날인 1919년 3월 8일 독립 만세 시위를 조직적으로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준비 기간을 거쳐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무렵에 시위가 시작되었다.
당시 수피아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양순희 또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수피아여학교 학생의 참여는 교사인 박애순(朴愛順), 진신애(陳信愛) 등이 맡았는데, 양순희는 이들의 인솔 아래 민성숙(閔成淑), 박영자(朴永子), 최경애(崔敬愛) 등 30여 명의 학생과 함께 무리를 지어 양림리 쪽에서 광주천을 따라 시위 행진을 하였고, 다시 작은장터에서부터 서문통을 거쳐 광주우편국 앞까지 갔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2시부터 5시경까지 시위를 이어가던 군중은 100여 명이 체포되면서 흩어졌다. 양순희는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9년 8월 11일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6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