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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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弘斗 |
영어공식명칭 | Kim Hongd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효선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유공자.
[개설]
김홍두(金弘斗)[1879~1933]는 1879년(고종 16) 전라남도 광산군 서창면 서창리[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서 태어났다. 38세이던 1916년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하였고, 1920년에는 중국 상하이[上海]로 가 임시정부를 도와 임무를 수행하였다.
[활동 사항]
1916년 대한광복회에 가입한 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박상진(朴尙鎭), 채기중(蔡基中) 등을 중심으로 1915년에 결성된 혁명 단체로, 주로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18년 대한광복회 조직이 발각되어 함께 활동하던 인물들이 붙잡혀 피신하던 중 1920년 7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에서 안창호(安昌鎬), 김구(金九)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접선하여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 조직 강화라는 목적을 가지고 국내에 잠입하였다. 이후 각 지역의 청년회와 연락하여 임시정부의 통신기(通信機) 설치에 힘쓰는 등 임무를 수행하였다.
김홍두는 임무 수행 중 전라남도 나주에서 붙잡혀 1920년 11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뒤 1921년 3월 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확정받고 옥고를 치렀다.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뒤에도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하다가 1926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붙잡혀 다시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묘소]
2017년 9월 3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1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