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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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세인 |
간행 시기/일시 | 1786년 -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 ‘사칠속편(四七續編)’으로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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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786년 -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 ‘사칠속편(四七續編)’으로 간행 |
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소장처 | 전남대학교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33[용봉동 300] |
성격 | 서간집 |
저자 | 기대승|이황 |
편자 | 기언정 |
간행자 | 기언정 |
권책 | 2권 |
행자 | 10행 18자 |
규격 | 20.2×14.5㎝[반곽] |
어미 |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
권수제 |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
판심제 | 사칠이기왕복서(四七理氣往復書) |
[정의]
16세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성리학자인 기대승이 사단칠정(四端七情) 및 이기(理氣)에 대해 이황과 왕복한 편지글을 모아 놓은 서간집.
[개설]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는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 이황(李滉)[1501~1570]과 주고받은 편지 중에서 1559년(명종 14)부터 1566년(명종 21)까지 8년 동안 이루어진 사단·칠정·이기에 관한 논변만을 모아 엮은 서간집이다.
[저자]
기대승[1527~1572]의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존재(存齋),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1527년(중종 22)에 광주 소고룡리(召古龍里) 송현동(松峴洞)[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서 부친 물재(勿齋) 기진(奇進)과 모친 진주강씨(晉州姜氏) 사이에서 5남 1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기묘명현(己卯名賢)인 복재(服齋) 기준(奇遵)이 기대승의 숙부이다. 숙부 기준이 기묘사화의 피화를 입어 세상을 떠나자, 부친 기진이 가족과 함께 광주에 정착한 이후 대대로 세거하였다. 7세 때부터 가학으로 여러 경서를 두루 읽으며 학문을 익혔고, 과거에 급제하기 전까지 성리학에 심취하였다. 기대승은 30대 때 당대 유학자들의 스승 격이었던 김인후(金麟厚)·이항(李恒)·정지운(鄭之雲)·이황(李滉) 등과 성리학에 관해 상론할 만큼 학문적으로 큰 성취를 이루었다. 특히, 이황과는 26년이라는 나이를 뛰어넘는 우의와 학문적 교감을 나누었다. 1558년(명종 13)에 32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후,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를 시작으로 다양한 요직을 두루 거쳤다. 1572년(선조 5)에 대사간을 지내다가 병이 깊어져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였는데, 고향으로 오던 중에 전라도 태인(泰仁)에서 병이 더욱 악화되자 사돈인 김점(金坫)의 집으로 거소를 옮겼다. 선조가 병증을 듣고 어찰(御札)을 보내 위문하며 어의 오변(吳忭)을 내려보냈으나, 어의가 도착하기 전에 병을 이기지 못하고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590년(선조 23)에 ‘문헌(文憲)’의 시호를 받았으며,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월봉서원(月峯書院)에 배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기대승과 이황의 왕복 서간문 중 이기에 관한 논변을 발췌하여 ‘이기변편(理氣辨篇)’이라 이름하고 청주서원(淸州書院)에서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이후 6대손 기언정(奇彦鼎)이 1786년(정조 10)에 ‘사칠속편(四七續編)’이라는 표제로 간행하였다. 1907년에 이전까지 간행된 기대승의 저술을 망라하여 14권 11책의 『고봉집(高峯集)』으로 엮을 때 본 문집 또한 중간(重刊)되었으며, 1970년 이 중간본을 석판본(石版本)으로 발간하게 되어 삼간(三刊)이 이루어졌다.
[형태/서지]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는 『고봉집』에 포함되어 전하기 때문에 판식은 동일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석판본으로, 『고봉집』의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 20.2×14.5㎝, 유계(有界)이다. 반엽(半葉)의 행자수는 10행 18자, 어미는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표제는 『고봉선생문집(高峯先生文集)』이나 권수제(卷首題)는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판심제(版心題)는 ‘사칠이기왕복서(四七理氣往復書)’이다.
[구성/내용]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는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편에는 기대승의 글이 4편, 이황의 글이 3편 실려 있고, 하편에는 이황의 글이 4편, 기대승의 글이 3편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이황은 이(理)의 순수성을 기(氣)와는 엄격하게 구별하여 이발(理發)과 기발(氣發)을 구분하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반면에 기대승은 이황의 주장대로라면 발하는 근원이 서로 다른 두 곳이 되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에 이기의 공발(共發)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의의와 평가]
기대승과 이황의 사칠이기 논변은 조선에서 전개된 성리학의 핵심적인 개념을 정립하는 한편, 사단·칠정·이기와 관련한 다양한 논쟁을 촉발함으로써 조선 전기 사상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두 사람의 철학적 담론을 담고 있는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는 16세기 조선의 사상과 철학적 전개 양상을 논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