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7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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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近始齋文集 |
이칭/별칭 | 근시재집,근시재선생문집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서희 |
간행 시기/일시 | 1783년경 - 『근시재생문집』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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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소장처 | 전남대학교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33[용봉동 300]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
성격 | 시문집 |
저자 | 김해 |
편자 | 김석윤 |
간행자 | 김돈|김영 |
권책 | 4권 2책 |
행자 | 10행 19자 |
규격 | 32.2×21.2㎝ |
어미 | 상하화문어미(上下花紋魚尾) |
[정의]
조선시대 중기에 활동하던 김해의 시문집.
[저자]
김해(金垓)[1555~1593]의 자는 달원(達遠), 호는 근시재(近始齋),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555년(명종 10)에 광주(光州)에서 출생하였다. 관찰사 김연(金緣)의 손자로 어려서는 퇴계문에서 배운 바 있는 숙부 후조공(後彫公)에게 수학하였다. 1588년(선조 21)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귀퇴하여 학봉, 서애와 같이 퇴계 문집을 수정하였다. 1589년(선조 22)에 등재하여 예문검열을 지냈으나 파임되었고,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삭직되었다. 임진왜란 시 의병을 일으켜 영남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안동, 의성, 군위 등에서 분전하는 중 1593년(선조 26)에 진중에서 피살되었다. 저서로는 『구익록』, 『행군순지』, 『서행일기』, 『향병일기』, 『근시재집』 등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근시재문집』은 김해의 유문은, 증손 김석윤(金錫胤)이 가장(家藏)되어 오던 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편차하여 불분권 1책의 형태로, 이보(李簠)에게 발(跋)을 받고 1708년(숙종 34)에 조덕린(趙德鄰)에게 서문을 받았다. 그러나 간행된 것은 70여년 뒤인 1783년경(정조 7)으로, 후손인 김돈(金墪)과 김영(金瑩) 등이 주축이 되어 김석윤(金錫胤)이 정리한 유고를 4권 2책으로 재편하고 다시 정범조(丁範祖)에게 발(跋)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근시재문집』은 4권 2책으로 10행 19자이다. 규격은 32.2×21.2㎝이며 상하화문어미(上下花紋魚尾)이다. 사주단변이며 행마다 경계가 있다.
[구성/내용]
『근시재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조덕린(趙德鄰)이 1708년(숙종 34)에 지은 서(序), 정범조(丁範祖)가 1783년(정조 7)에 지은 발(跋),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이보(李簠)의 발(跋)이 있다. 권1에는 5언고시, 7언고시, 5언율, 7언율, 5언절구, 7언절구의 시와 사(辭)가 수록되어 있고, 권2에는 4편의 서(書)가 있다. 권3에는 서, 잡저, 제문, 표, 부, 계, 유사, 묘지가 있고 권4에는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도산언지시동서(陶山言志示同棲)」, 「침류정연용담운(枕流亭演龍潭韻)」, 「실제(失題)」, 「재거야좌우음(齋居夜坐偶吟)」, 「차월천문운(次月川文韻)」. 「일체당근황월천문(日體堂謹黃月川文)」 등이 있다. 서는 대개 고례고제(古禮古制)를 행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상례(喪禮), 봉사(奉祀), 장전후례(葬前後禮) 등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도 밝히고 있다. 잡설도 「이기설(理氣說)」은 그의 학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근시재선생문집』은 유학자이자 군자의 면모가 드러나는 시가 대다수 수록되어 있으며 난세의 시기를 만나 우국충정을 그린 작품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