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432 |
---|---|
영어공식명칭 | Exemplum in Memoriam Kwangju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유하 |
창작|발표 시기/일시 | 1981년 5월 8일 - 「광주여, 영원히」 발표 |
---|---|
초연|시연장 | 독일 쾰른 |
공연장 | 북한 |
공연장 | 일본 동경 |
공연장 | 서울 예술의전당 -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서초동 725-1] |
공연장 | 광주문화예술회관 - 광주광역시 북구 북문대로 60[운암동 328-16] |
공연장 | 광주비엔날레 - 광주광역시 북구 비엔날레로 111[용봉동 산 149-2] |
성격 | 교향 연주곡 |
양식 | 교향시 |
작곡가 | 윤이상 |
연주자(가수) | 독일 쾰른의 WDR 방송 관현악단[1981년 5월 8일 와카스기 히로시의 지휘로 초연됨] |
공연(상영) 시간 | 20분 25초~22분 |
[정의]
윤이상이 5.18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하여 1981년에 작곡한 교향시.
[개설]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던 윤이상에게는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대한민국과의 사이에 아픈 상처가 있었다. 북한을 방문하였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강제로 연행되었고 가혹 행위와 함께 옥고를 치렀던 것이다. 국제 사회의 석방 운동으로 가까스로 풀려났으나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방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윤이상은 의식적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거두었다고 한다. 1980년 5월에 독일 제1공영 방송 함부르크 지국의 위르겐 힌츠페터가 전라남도 광주에 잠입하여 광주의 항쟁을 촬영한 필름이 독일과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윤이상은 뉴스를 통해서 상상하기 어려운 비극이 조국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경악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윤이상은 마침 독일 쾰른의 WDR 방송으로부터 작품을 위촉받아 듣고 보았던 5.18민주화운동을 작품으로 형상화시켰다. 윤이상은 5.18민주화운동을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고 오히려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정의와 평화가 도래할 것을 기원하며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에 희망을 담았다.
[공연 상황]
「광주여, 영원히」는 독일 쾰른의 서부 독일 라디오 방송 교향악단(WDR-sinfonie Orchester)과 와카스기 히로시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이후로는 1982년 8월 북한과 1989년 일본 동경에서 연주되었다. 한국에서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특별 담화가 발표된 후, 1994년 9월 8일 재단 법인 예음문화재단이 주최한 ‘윤이상 음악 축제’를 통하여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첫 연주가 있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광주일보사가 주최한 ‘윤이상 음악제’에서 1994년 9월 13일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연주되었다. 2000년에는 5.18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와 광주비엔날레 특별 축하 공연에서 목포시립교향악단의 연주가 있었다. 2020년에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시립교향악단에서 「광주여, 영원히」공연을 온라인으로 중계하였다.
[내용]
「광주여, 영원히」는 단악장인 표제적 교향시이며, 내용 면으로는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제1부[처음~ 110마디]: 민중들의 봉기와 독재 정권의 군인들에 의한 잔인한 대량 학살 내용 표현
제2부[111마디~ 170마디]: 죽은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민중들의 공포 표현
제3부[171마디-269마디]: 트럼펫의 팡파르로 시작되는 승리의 행렬과 한국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투쟁해 달라는 호소, 윤이상의 대한민국을 향한 희망 표현
[의의와 평가]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교향시의 영향은 대단하였다. 전 세계의 예술계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분노하며 대한민국에 주목하였다. 윤이상은 5.18민주화운동을 비관적 시각을 넘어서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으로 바라보았다. 작품에서 윤이상은 현장의 비극과 암울함도 재현하였으나 시민들을 격려하면서 투쟁을 호소하였다. 윤이상의 바람대로 전라남도 광주의 시민들은 5.18 진상 규명을 포함하는 5월 운동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신군부 정권과 투쟁하였고 이러한 투쟁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초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