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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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魯認錦溪日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노인 금계일기』 보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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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산83-3]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광주박물관에 기탁된 노인(魯認)이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일본에 사로잡혀 가 일본과 중국의 피로(被虜) 생활을 담은 일기.
[개설]
『노인 금계일기』는 정유재란 때에 일본에 사로잡혀 갔던 사인(士人) 노인(魯認)[1566~1623]의 일기이니, 금계는 그의 호이다. 노인은 1566년(명종 21) 나주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공식(公識),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노인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율 휘하에 들어가 전쟁에 참여하였다. 1597년 8월 남원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잡혀갔다. 노인은 일본에서 피로 생활을 겪다가 탈출하여 중국 광동(廣東), 산동(山東), 북경(北京) 등을 거친 뒤 1600년(선조 34)에 본국으로 돌아왔다. 이 일기는 그 동안의 기록이다.
[형태]
1책(67매)으로 필사본이다. 세로 33.4㎝, 가로 23.4㎝이다.
[구성/내용]
현전하는 이 일기는 1599년(선조 32) 2월 22일부터 6월 27일까지의 4개월의 기록으로 앞과 뒤가 끊어진 채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해지는 것 전후로도 일기를 썼을 것으로 추정되나, 포로로 보낸 2년 5개월 가량의 경험 중 4개월의 일기만 전해져 완결되지 못한 점이 있다. 현전하는 부분에는 일본에서 탈출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탈출 성공까지의 상황과 중국에서의 생활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1599년 3월, 중국 차관(差官) 진병산(陳屛山)과 이원징(李源澄)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가는 배편으로 일본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갔다. 4월, 복건성에 도착, 「최귀원정소(催歸原情疏)」를 올려 귀국시켜주기를 청하였다. 5월, 무이서원(武夷書院)에 머물면서 사조갑(謝兆甲)·예사화(倪士和) 등과 예제(禮制) 등을 논하였다. 6월, 군문(軍門)에서 상소를 조정에 주달하여 황제에게 조서(詔書)를 받는다. 노인은 중국 생활 중 중국의 학문, 제도 등에 대한 중국인과의 문답을 중점적으로 기록하였다.
목판본 『금계집(錦溪集)』(1830년 간행)에는 『금계일기』에서 멸실 된 전후 부분이 포함된 2년 동안 피로 생활이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일기는 강항(姜沆)의 『간양록(看羊錄)』·정희득(鄭希得)의 『해상록(海上錄)』과 함께 당시 일본에 사로잡혀 갔던 조선 사인이 남긴 기록 중의 하나이다. 세 기록은 당시 일본 내부의 사정과 피로인(被虜人)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금계 노인은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일본에서 배로 탈출하여 명(明)나라를 거쳐서 귀국함으로써, 체험 공간이 중국으로까지 확장되어 있고, 당시의 중국의 풍속·제도 등과 중국인의 조선에 대한 관념과 대우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