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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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山水利組合 |
영어공식명칭 | Gyeongsan Irrigation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 있었던 수리조합.
[개설]
일제는 1920년부터 조선을 식량공급기지로 만들기 위해 15년 계획의 산미증식계획을 수립하였다. 산미를 증식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본인 대지주를 앞세워 수리조합을 설립하였다. 수리조합의 설립은 소작료 인상과 토지 상실을 우려한 농민들의 반대운동 때문에 초기부터 저조하였다. 경산에서는 경산군청이 주도하여 1925년부터 수리조합 설치가 추진되어 사무실을 경산군청사 안에 두고 운영되었다.
[설립 목적]
1925년 경상북도가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으로 토지개량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에 경산 지역에서도 토지개량사업에 부응하여 수리조합의 설립이 추진되었다.
[변천]
경산 지역은 1925년 5월 10일 경상북도에서 네 번째로 수리조합 설치인가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 목적은 밭을 논으로 개간하고, 관개(灌漑)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논의 관개 개선에 있었다. 일찍부터 미곡집산지로 알려졌던 경산 지역은 경부선 철도 부설 이후 일본인의 농업 이민이 급증하였다. 이리하여 이주 일본인의 농장과 동양척식주식회사 및 조선흥업주식회사 등 거대한 농장이 설립되어 농업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경산수리조합 설립에는 일본인 대지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경산군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일부 수립조합의 설립을 반대하는 일본인 지주들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거의 반대는 없었다.
경산수리조합은 설립 이후 운영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첫째, 설계된 보(洑)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경산면, 진량면, 압량면, 하양면 등지는 비교적 수리시설이 잘 갖추어져 물 걱정을 하지 않았던 지역이었다. 특히 하양면과 압량면에는 원래 금호강을 연결하는 만세량보(萬世梁湺)와 상세량보(上世梁湺)가 있어 한재(旱災)에 염려가 없었다. 그러나 새로 건설된 보의 설계가 부실하여 이앙을 못할 정도가 되었다. 하양면 일대는 지대가 높아 관개에 어려움이 있었고, 압량면 용암동[지금의 압량읍 용암리]은 많은 비가 내리면 물이 흘러들어 동네를 전부 휩쓸 정도였을 뿐만 아니라 수조 구역 밖이어서 물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모두 보의 설계 부실 때문이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만세량보’를 ‘망세량보(亡世粱洑)’라고 부를 정도였다. 둘째, 궁민구제는 경산수리조합의 설립 목적이었는데, 공사 청부업자가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셋째, 경산수리조합 설립으로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다. 특히 압량면 용암동의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다. 넷째, 지역 농민들의 물싸움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면, 용암동 동민 80여 명과 남신동 동민 30여 명의 충돌하였다. 그 원인은 용암동 동민들은 수조 밖 구역이어서 물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산수리조합은 설립 초기에는 국고보조금과 조합채로 운영할 예정이었다. 이에 조합의 사업 수행으로 이익을 받는 정도에 따라 수세를 부과하여 조합비로 삼았다. 그러나 부과된 조합비는 경상북도 지방에서 제일 높았고, 운영 과정에서 설치 사업비, 추가 개량 사업비, 재해 복구 사업비, 세입 결함 보전비 등의 명목으로 조합채를 계속 발행해야만 했다. 이리하여 경산수리조합은 1934년 경영이 곤란한 수리조합으로 조합정리계획안 병(丙)에 포함되었다. 경산수리조합의 지주들은 지주대회를 열고, 경산수리조합의 해체, 지주 측의 직접 경영과 수리조합 역원의 배척을 결의하는 등 대응책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수립조합 지주들은 수리조합의 개선을 위해 직접 총독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타개책을 모색하였다. 또 경산수리조합 몽리인회를 조직하여 폐해의 개선을 모색하였으나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현황]
경산수리조합은 1935년 실시된 불량수리조합 정리계획안에 포함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경산수리조합의 설립과 해체는 경산 지역에서 전개된 일제 강점기 식량 수탈의 제 양상과 이에 대한 농민들의 수난과 저항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