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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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山市立博物館 碑石群 |
이칭/별칭 | 중방동 비석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박물관로 46[사동 65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창국 |
건립 시기/일시 | 1680년 11월 - 현감한공광청덕선정유애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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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710년 8월 - 현령홍공처주청덕선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758년 9월 - 현령김후휘종정청덕선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821년 5월 - 현령윤후휘조청덕애민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869년 9월 - 오위장김공휘기주유공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870년 12월 - 현령이후헌소영세불망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894년 7월 - 현령유후달준흥학송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902년 8월 - 군수황공윤수청덕선정비 건립 |
이전 시기/일시 | 2008년 12월 - 경산시립박물관 비석군, 경산시청에서 경산시립박물관으로 이전 |
현 소재지 | 경산시립박물관 비석군 - 경상북도 경산시 박물관로 46[사동 655-1] |
원소재지 | 경산시청 - 경상북도 경산시 남매로 159[중방동 701-17] |
성격 | 선정비|공덕비 |
관련 인물 | 한광|황윤수|김종정|박종채|윤조|홍처주|이헌소|김기주|안시웅|유달준 |
재질 | 석재 |
소유자 | 경산시 |
관리자 | 경산시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사동 경산시립박물관 내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의 선정비 및 공덕비군.
[개설]
경산시립박물관 비석군은 조선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산현령(慶山縣令)·경산군수(慶山郡守)·자인현감(慈仁縣監) 등을 지낸 지방관의 선정비(善政碑) 8기와 지역 인물 공덕비 2기로 구성되어 있다. 선정비는 해당 고을을 통치한 지방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방민들이 세우는 것으로, 불망비(不忘碑)·휼민비(恤民碑)·애민비(愛民碑) 등으로도 불린다.
[건립 경위]
경산시립박물관 비석군은 크게 지방관의 공적과 은혜를 기린 선정비와 경산 출신 인사의 공적을 기린 공덕비로 구분된다. 선정비는 경산현령 6기, 경산군수 1기, 자인현감 1기이며, 공덕비는 2기이다. 2008년 12월에 경산시청에서 경산시립박물관으로 옮겼다.
[위치]
경산시립박물관 비석군은 경산시립박물관 남쪽 야외 전시장에 있다.
[형태와 금석문]
1. 현감한공광청덕선정유애비(縣監韓公洸淸德善政遺愛碑)
1676~1681년에 자인현감을 지낸 한광(韓洸)을 기리고자 1680년(숙종 6) 11월에 건립하였다. 비석에는 이임(移任)을 안타까워하는 시가 새겨져 있다. 비석 받침 크기는 높이 5㎝, 너비 56㎝, 두께 56㎝이며, 비신 크기는 높이 80㎝, 너비 37.5㎝, 두께 12.5㎝, 비수(碑首) 크기는 높이 50㎝, 너비 61㎝, 두께 15㎝이다. 비수는 하엽형(荷葉形)이다. 한광의 선정비는 자인면 원당리 비석군에도 있다.
2. 군수황공윤수청덕선정비(郡守黃公崙秀淸德善政碑)
1900~1902년에 경산군수를 지낸 황윤수(黃崙秀)를 기리기 위해 1902년(광무 6) 8월에 건립하였다. 비석에는 송사를 잘 다스린 공적과 청렴함이 새겨져 있다. 현재 비신만 남아 있으며, 크기는 높이 108㎝, 너비 42㎝, 두께 20㎝이다.
3. 현령김후휘종정청덕선정비(縣令金侯諱鍾正淸德善政碑)
1755~1758년에 경산현령을 지낸 김종정(金種正)을 기리기 위해 1758년(영조 33) 9월에 건립하였다. 비석에는 흉년 때 구제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현재 비신만 남아 있으며, 크기는 높이 101㎝, 너비 53㎝, 두께 21㎝이다.
4. 현령박후휘종채타루비(縣令朴侯諱宗采墮淚碑)
1833년에 경산현령으로 부임하여 1835년 임지에서 세상을 떠난 박종채(朴宗采)를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박종채는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의 아들이자 개화론자 박규수(朴珪壽)의 아버지이다. 비석의 마모가 심하여 건립 연도는 명확하지 않다. 현재 비신만 남아 있으며, 크기는 높이 130㎝, 너비 56㎝, 두께 18㎝이다.
5. 현령윤후휘조청덕애민비(縣令尹侯諱稠淸德愛民碑)
1818~1822년에 경산현령을 지낸 윤조(尹稠)를 기리기 위해, 재임 중이던 1821년(순조 21) 5월에 건립하였다. 비석에는 호적미(戶籍米)를 혁파한 공로가 새겨져 있다. 현재 비신만 남아 있으며, 크기는 높이 112㎝, 너비 43㎝, 두께 19㎝이다.
6. 현령홍공처주청덕선정비(縣令洪公處宙淸德善政碑)
1703~1707년에 경산현령을 지낸 홍처주(洪處宙)를 기리기 위해 1710년(숙종 33) 8월에 건립하였다. 비석에는 제액(題額)과 간지만 새겨져 있다. 비신 크기는 높이 108㎝, 너비 46㎝, 두께 25.5㎝이며, 개석 크기는 높이 24㎝, 너비 78㎝, 두께 50㎝이다.
7. 현령이후헌소영세불망비(縣令李侯憲昭永世不忘碑)
1869~1874년에 경산현령을 지낸 이헌소(李憲昭)를 기리기 위해, 재임 중이던 1870년(고종 7) 12월에 건립하였다. 비석에 새겨진 시는 이헌소의 공덕을 칭송한 것이다. 비신 크기는 높이 123.5㎝, 너비 49.5㎝, 두께 27㎝이며, 개석 크기는 높이 39.5㎝, 너비 78㎝, 두께 51㎝이다. 이헌소의 선정비는 압량읍행정복지센터와 대구 고산초등학교에도 1기씩 남아 있다.
8. 오위장김공휘기주유공비(五衛將金公諱基柱有功碑)
흉년 때 쌀을 내어 경산현 백성들을 구제한 오위장(五衛將) 김기주(金基柱)를 기리기 위해 1869년(고종 6) 9월에 건립하였다. 비석 받침 크기는 높이 20㎝, 너비 82㎝, 두께 55㎝이며, 비신 크기는 높이 121㎝, 너비 45㎝, 두께 20㎝, 개석 크기는 높이 36㎝, 너비 78㎝, 두께 63㎝이다. 비석의 글자에는 붉은 색이 칠해져 있다.
9. 예수안시웅애호군졸비(銳帥安時雄愛護軍卒碑)
안시웅(安時雄)이란 인물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건립 시기와 대상인 안시웅의 이력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데, 비석에 ‘예수(銳帥)’라는 표현이 있어 하급 무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애호군졸(愛護軍卒)’이라는 표현이 있어 군졸을 사랑하고 잘 보호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귀부(龜趺) 크기는 높이 39㎝, 너비 97㎝, 두께 97㎝이며, 비신 크기는 높이 91㎝, 너비 44㎝, 두께 16㎝이다. 비신은 위쪽은 넓고 아래쪽은 좁은 원수형(圓首形)이다.
10. 현령유후달준흥학송덕비(縣令兪侯達濬興學頌德碑)
1892~1895년에 경산현령을 지낸 유달준(兪達濬)을 기리기 위해 재임 중이던 1894년(고종 31) 7월에 건립하였다. 비석에는 향교를 보수하고 가난을 구제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비석 받침 크기는 높이 7㎝, 너비 63㎝, 두께 43㎝이며, 비신 크기는 높이 91㎝, 너비 34㎝, 두께 16㎝이다.
[현황]
경산시립박물관 비석군은 현재 개별 비석마다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또한 10기의 비석과 별개로 1964년에 건립한 경산군수 장재호의 선정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경산시립박물관 비석군은 조선 후기 경산 지역 통치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