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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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東齋 |
영어공식명칭 | Dodongjae House |
이칭/별칭 | 도동서원,도동단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하대3길 13-6[하대리 175-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백지국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하대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재사.
[개설]
도동재(道東齋)는 1923년 설총(薛聰)[?~?]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로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고도 불린다. 설총의 자는 총지(聰智)로 경산 출신의 신라 고승 원효(元曉)의 아들이다. 이두를 집대성하였으며,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다. 신문왕[재위 681~692] 연간 국학(國學)에 큰 역할을 하였다. 유학 발전에 공로를 인정받아 고려 시대인 1022년(현종 13)에 홍유후(弘儒侯)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설총의 행적을 엮은 『홍유후실기(弘儒候實紀)』에는 『경주지(慶州志)』를 인용하여, 설총이 유곡(油谷)[현 경상북도 경산시 유곡동]에서 태어나고, 유천(柳川)[현 경상북도 경산시 여천동]에서 성장하였다고 한다. 유곡과 여천은 모두 옛 자인현(慈仁縣) 땅이다. 이를 근거로 조선 후기 자인 사림들은 설총을 지역 출신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추숭 사업을 진행하였다.
[위치]
남산면행정복지센터에서 경산시 남산면 하남로를 따라 서쪽 경산 시내 방면으로 2.7㎞ 가량 이동하면, 삼거리에서 지방도 제925호와 합류한다. 여기서 남쪽으로 500m 가량 이동하면, 도로 우측에 ‘도동서원’ 표지석이 나온다. 도동재는 표지석에서 120m 정도 떨어진 낮은 구릉 위에 위치해 있다. 도동재 서쪽에는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변천]
도동재는 1864년(고종 1)에 도동단(道東壇)으로 건립되었으나 관리가 소홀하여 점차 퇴락하였다. 이후 1923년에 이종호(李鍾浩)와 지역 사림들이 공의하여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하대리 소재 단소(壇所) 아래에 도동재를 건립하였다. 이어 1925년에는 단소 옆에 홍유후설총신도비(弘儒侯薛先生神道碑)를 설립하였으며, 장승택(張升澤)이 비문을 찬하였다. 이후 몇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2007년에는 경상북도 경산시의 지원을 받아 단소 옆에 사당인 경모사(景慕祠)를 건립하였으며, 도동재를 ‘도동서원’으로 편액하였다.
[형태]
도동재 경내에는 강당과 사당, 신도비 등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에 각각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 평면 구조이다. 중앙 대청에 ‘도동서원(道東書院)’ 편액이 걸려 있으며, 좌측 방은 ‘해경당(解經堂)’, 우측 방은 ‘명일헌(明日軒)’이라 편액하였다. 가구는 활 모양으로 굽은 대량(大樑) 위에 짧은 동자기둥 대공(臺工)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3량가의 간결한 구조이다. 사당인 경모사(景慕祠)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황]
도동재는 매년 음력 3월 상정일(上丁日)에 향사를 지낸다. 도동재에는 편액을 비롯하여 「도동재기(道東齋記)」, 「도동재중수기(道東齋重修記)」, 「표창기(表彰記)」 등 각종 기문과 표창기가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