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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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栗山書院 |
영어공식명칭 | Yulsanseowon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금박로 549[시문리 221-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지국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시문리에 있는 서원.
[개설]
율산서원(栗山書院)은 박언침(朴彦忱)·박현(朴鉉)·박눌생(朴訥生)[1374~1449]·박경신(朴景愼)[1414~1462]·박운달(朴雲達)[1491~1554]·박재호(朴在鎬)[1896~1967] 등 밀양 박씨(密陽朴氏) 6인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1977년에 건립되었다.
박언침은 신라 54대 국왕 경명왕(景明王)의 장자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진 밀양 박씨 가문의 시조이다. 박현은 고려 후기 문신으로, 시호는 무열(武列)이며 밀양 박씨 규정공파(糾正公派)의 파조(派祖)이다. 박눌생의 자는 돈지(惇之), 호는 운수(雲叟), 시호는 충간(忠簡)이며, 1409년(태종 9)에 문과 급제 후 호조참판(戶曹參判)을 등을 지냈다. 박경신은 박눌생의 아들로, 자는 자흠(子欽), 호는 돈수(遯未), 시호는 충양(忠襄)이다. 1438년(세종 20)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훈련원사직(訓鍊院司直) 등을 역임하였다.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였다가 실패하자 전라북도 전주 지역 소양산에 은둔하였다.
박운달의 자는 달지(達之), 호는 요산(樂山)이며, 1516년(중종 11)에 무과에 급제한 후 봉상시주부(奉常寺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홍귀달(洪貴達)의 문인으로 관직에서 물러 난 후 자인(慈仁) 지역에 은둔하였으며, 김대유(金大有)·박하담(朴河淡)과 교유하였다. 박재호의 아명은 동일(東日), 자는 경숙(敬淑), 호는 춘강(春崗)이다. 박운달의 14세손이며,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다문리 출신이다. 우하근(禹夏根)에게 학문을 배우고, 성심도(聖心道)를 창종(創宗)하였다. 오릉(五陵)·알영정(閼英井)·숭덕전(崇德殿) 보수 등 위선(爲先) 사업에 힘썼다.
[위치]
다문초등학교 정문에서 동쪽 길로 100m 이동 후 지방도 제925호를 따라 다시 남쪽으로 600m 가량 이동하면, 도로 좌측 편 용호산(龍虎山)[122.9m] 자락에 율산서원이 위치해 있다. 북쪽에는 박재호의 묘소, 동쪽에는 부제지(夫提池)가 있다.
[변천]
율산서원은 경산 지역에 세거하는 밀양 박씨 후손들이 주축이 되어 건립하였다. 1973년에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1977년에 자인향회(慈仁鄕會)와 경상북도 유림도회(儒林道會)의 공의를 얻어, 그 해 10월 3일에 완공되었다.
[형태]
율산서원은 사당과 강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이다 외삼문인 경행문(景行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강당인 숭정당(崇正堂)이 있고, 숭정당 뒤로 각각 내삼문과 전사청을 갖춘 상현사(尙賢祠), 혜성사(慧成祠)가 좌우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숭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반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2칸은 마루를 설치하고 양쪽 끝에 온돌방을 두었다. 건물에 ‘卍’자의 흔적이 보이고, 건물의 구조 형식과 단청의 흔적이 사찰의 건축과 매우 흡사한 것으로 보아 사찰의 대웅전을 보수하여 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전면에 원기둥과 잘 치석된 원형초석을 사용하였다.
강당 뒤에 위치한 내삼문을 지나면 사당이 있다. 율산서원은 특이하게 2개의 사당을 두었는데 숭현사는 동쪽, 혜성사는 서쪽에 위치한다. 두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동일한 형식을 보인다. 율산서원은 서원이 일반적으로 익공 혹은 민도리 형식을 취하는 것과 다르게 다포 양식을 보이고 있어 특이하다. 전면에 원기둥과 잘 치석된 원형초석을 사용하였다.
[현황]
율산서원은 매년 스승의 날인 5월 15일과 개천절이자 건립일인 10월 3일에 유림도객과 후손들이 향사를 지낸다. 또한 박재호의 학문 정신을 실천하고자, 내부에 성심도문학장학재단을 설치하였다.
[의의와 평가]
율산서원의 건립 및 운영 양상은 서원의 현대적 계승 의식을 잘 보여준다.